자기자본 없는 페이퍼컴퍼니를 활용한 ‘자금 돌리기’ 방식으로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문은상 전 신라젠 대표가 파기환송심에서 원심과 같은 형량을 선고 받았다.
8일 서울고법 형사2부(부장판사 이원범)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문 전 대표의 파기환송심에서 환송 전 원심과 같이 징역 5년, 벌금 10억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함께 기소된 곽병학 전 감사에게는 징역 3년 및 벌금 10억원을, 이용한 전 대표에게는 징역 2년6개월의 집행유예 3년을, 페이퍼컴퍼니 실사주 조모씨에게는 징역 2년6개월 및 벌금 5억원을 각 선고했다.
이들은 페이퍼컴퍼니 역할을 한 크레스트파트너를 활용해 350억원 상당의 신주인수권을 인수해 신라젠 지분율을 높인 것으로 조사됐고, 기관투자자에 투자 자금을 받아 신라젠 상장 이후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은 것으로 조사됐다.
2013년 4월께 신라젠이 청산하기로 한 별도 법인의 특허권을 양수하며 대금을 부풀려 지급하는 방식으로 29억3000만원을 배임한 혐의도 있다. 또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을 받을 수 없는 지위에 있음에도 다른 사람에게 스톡옵션을 부여하며 자신들의 몫도 포함시킨 배임 혐의도 받는다.
문 전 대표는 350억원대 배임 혐의가 인정돼 파기환송 전 1심에서 징역 5년, 벌금 350억원을 선고 받았다.
항소심을 거치며 문 전 대표 등의 배임 인정 액수는 3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정확한 배임 액수를 계산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2월 파기환송 전 2심에서 문 전 대표는 징역 5년, 벌금 10억원을 선고받았다.
자금 돌리기 방식으로 회사에 신주인수권부사채 인수대금을 납입한 뒤, 곧바로 인수대금을 인출해 빌린 돈을 갚는 데 쓴 것은 업무상배임에 해당한다는 판단이었다. 실질적으로는 인수대금 350억원이 회사에 납입되지 않은 것이므로 회사는 손해를 입은 것이라는 취지다.
이날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자본시장에서 신주인수권부사채가 적법하게 발행된 것 같은 외형을 갖추기 위해 신라젠과 페이퍼컴퍼니 간에 자금이 회전하는 듯한 외형을 만드는 등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궁극적으로 다른 투자자들의 투자금을 유입시킨 결과 신라젠 주가 상승에 따른 이익을 누릴 수 있게 됐다”며 “이런 정상을 고려하면 피고인들의 죄책이 무거워 처벌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투자자들의 손해는 궁극적으로 신약의 임상 실패로 인한 것으로 보이며 그 책임이 전적으로 피고인들에게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다른 자본시장법 위반 행위로 나아기지 않은 점 등을 참작했다고 재판부는 밝혔.
한편 이 사건으로 상장폐지 위기를 겪은 신라젠은 지난 10월12일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위원회에서 상장 유지 결정을 받고 다음날 거래가 재개됐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