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는 8일 공청회를 열고 ‘건강보험 지속 가능성 제고방안’과 ‘필수의료 지원대책’을 발표했다. 보건복지부 제공
최근 두통으로 병원을 찾은 A 씨. 진찰 결과 뇌질환 의심 소견은 없었지만 의사가 “건강보험이 적용된다”며 뇌·뇌혈관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권유했다. 비용은 47만5000원. A 씨는 이 중 40%(19만 원)를 부담했다. 나머지 28만5000원은 건강보험 재정으로 충당됐다. 하지만 이르면 내년 초부터 A 씨와 같은 경우 건보 적용이 되지 않아 본인이 비용을 전액 부담해야 할 전망이다.
보건당국이 지난 정부의 건보 보장성 강화 정책, 이른바 ‘문재인 케어’에 칼을 빼들었다. 문재인 케어 이후 급증한 건보 지출을 줄이고, 아낀 돈을 중증·응급질환 진료와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 확충에 쓴다는 계획이다. 보건복지부는 8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공청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방안 및 필수의료 지원대책’을 발표했다.
●“과잉 진료 막자”…건보 허리띠 졸라매기
이번 대책의 핵심은 MRI와 초음파 검사 등 과잉 진료 문제가 지적돼 온 항목에 대해 건보 적용 기준을 강화하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MRI와 초음파 검사에 쓰인 건보 지출 진료비는 총 1조8476억 원. 문재인 케어 도입으로 주로 비급여였던 이들 검사에 건보 적용(급여)이 시작된 2018년(1891억 원)보다 10배로 폭증했다.
초음파 검사도 ‘의학적으로 꼭 필요한 경우’에만 건보 적용이 되도록 기준을 강화하기로 했다. 과잉 진료가 늘어나면서 단순 복부 불편을 이유로 하루 동안 유방, 방광, 갑상샘 등 5개 부위에 초음파 검사를 한 사례도 있다. 척추, 어깨 수술을 앞둔 환자마저 관례적으로 간, 담낭을 살펴보는 상복부 초음파 검사를 시행한다. 감사원은 상복부 초음파 과잉 진료 사례가 3년 간(2018년 4월~2021년 3월) 1만9000여 건이라고 밝혔다.
‘의료 쇼핑’ 대책도 마련된다. 정부는 물리치료 등으로 1년에 365회 이상 습관적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에 대해 평균 20% 수준인 현 본인부담금 비율을 90%까지 올린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외래 진료를 365회 이상 받은 환자는 2550명에 달했다.
● 건보 재원 아껴 필수의료 지원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는 외국인 피부양자에 대한 건보 적용 기준도 강화한다. 현재 외국인 피부양자의 경우 한국에 입국하는 즉시 건보 적용이 된다. 앞으론 국내에서 6개월 이상 체류해야 가능하다. 복지부는 “전문가 검토를 거쳐 내년 초부터 단계적으로 강화된 건보 기준을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이렇게 아낀 건보 재원을 중증·응급의료, 산부인과 소아과 등 필수의료를 확충하는 데 집중 투입할 방침이다. 지난 7월 서울 아산병원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간호사가 수술을 받지 못해 숨진 사건을 계기로 드러난 ‘필수의료 공백’을 메우겠다는 의도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