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엽 사회부 차장
지난달 23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26m²(약 8평)짜리 원룸에서 월세를 살던 60대 어머니와 30대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부채와 생활고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으로 삶을 마감한 것으로 보인다.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었던 모녀가 긴급 복지 지원 등에서 누락된 과정은 전형적인 탁상 행정을 보여준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모녀가 주민등록상 주소지를 서울 광진구에서 옮기지 않았기 때문에 사는 줄 몰랐다고 했다. 그러나 모녀는 올 5∼10월 전기요금 9만2430원 등을 못 냈다. 요금 납부자 명의는 과거 세입자였지만 명의가 누구든 해당 원룸에 위기 가구가 산다는 건 파악됐어야 했다. 그러나 한국전력공사는 보건복지부에 모녀가 아닌 예전 세입자의 이름을 넘겼고, 구청은 서류상 해당 원룸에 거주자가 없는 것으로 봤다.
이사한 뒤 명의를 변경하지 않고 공과금을 납부하는 세입자는 흔하다. 그래도 납부에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우 현 시스템에서는 요금 체납 시 엉뚱한 이전 세입자가 위기 가구로 포착된다. 정부의 위기 가구 발굴 시스템에 구조적 허점이 있는 것이다. 정부는 모녀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기 전날 ‘그물망’을 촘촘히 하겠다며 위기 가구 발굴에 활용하는 정보를 34종에서 44종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숫자를 늘리기에 앞서 공과금이 체납된 집 주소를 기준으로 위기 가구를 발굴, 지원하는 방안부터 검토했어야 했다.
이 도로는 2019년에도 보행로 구분 및 과속방지턱 설치의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바뀌지 않았다. 올 2월 서울시가 내놓은 ‘어린이보호구역 종합관리대책’에까지 포함됐지만 제한속도가 낮아졌을 뿐이었다. 그나마 단속 카메라도, 과속 방지턱도 설치되지 않아 실효성은 크지 않았다. 서울시교육청은 뒤늦게 시내 초등학교 주변 교통 환경을 전수 조사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했다.
시대에 뒤떨어진 행정 사례도 많다. 요즘 50만 명 가까운 주택임대사업자들은 부기 등기 의무 유예 종료일(9일) 전 부랴부랴 등기를 하느라 난리다. 법원 인터넷 등기소에서 전자 등기를 신청하는 이도 많은데, 시스템이 마이크로소프트(MS)도 이미 지원을 종료한 인터넷 익스플로러(IE)에 ‘최적화’돼 있다. 말이 최적화지 크롬 등 보편화된 브라우저로는 안 되는 거나 매한가지다. 그나마 익스플로러로도 평범한 사용자에게는 어려운 보안 설정 조정 등을 거쳐야 해 작성 및 제출 과정에서 ‘키보드를 부숴 버리고 싶었다’는 이가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일부에선 이전 정부가 부기 등기 의무화로 임대사업자를 거추장스럽게 하는 게 목적이었다면 제대로 성공한 것이란 시니컬한 반응도 나온다.
최근 행정 서비스 수준을 보면 정말 대한민국이 선진국의 문턱에 선 나라가 맞나 싶을 정도다. 다른 부문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행정 서비스의 신속한 업그레이드가 절실한 시점이다.
조종엽 사회부 차장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