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산의 덫] 〈上〉 덫에 걸린 사람들 “고생 끝에 예순 넘어 장만한 땅 임차인이 폐기물 버리고 잠적 처리비까지 내라니 분하고 억울”
2017년경 불법 폐기물 투기업자가 충북 음성군 원남면 산기슭에 버리고 도주한 쓰레기산의 최근 모습. 음성군이 투기자에게 처리 명령을 내렸지만 쓰레기는 치워지지 않았고, 처리 책임은 땅주인에게 넘어갔다. 3000t의 쓰레기를 치우는 데는 약 10억 원이 들 것으로 추산된다. 음성=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
“너무 억울해가 몇 번이고 죽어버릴까 고민했다카이. 우리가 죽으면 나라가 해결해줄까 싶어가….”
최근 대구 수성구의 자택에서 만난 문수용(81) 김순연(79) 씨 부부는 이같이 하소연하며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세 자녀를 키우며 맨손으로 시작해 안 해본 일이 없는 부부는 2005년 예순이 넘어 빚을 갚고 남은 전 재산으로 경북 경산시에 노후 대비용 땅을 마련했다.
그런데 2019년 4월 날벼락이 떨어졌다. 토지 임차인이 폐기물을 산처럼 투기한 뒤 잠적한 것. 3951m²(약 1200평)가량인 공장 부지는 쓰레기 3000t으로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찼다.
“원인자 등 책임자가 처리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2022년까지 모든 쓰레기산 처리를 완료해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겠습니다.”
그러나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실이 환경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바탕으로 동아일보 취재팀이 확인한 결과 지방자치단체가 행정대집행으로 치운 전국 쓰레기산 108곳 가운데 절반인 54곳(43만6328t)은 처리 비용이 무고한 피해자(땅주인)에게 부과된 것으로 확인됐다. 구상금으로 청구된 액수가 337억여 원에 이른다.
투기 범죄자들에게도 구상금이 청구됐지만 미리 재산을 숨겨둔 범죄자들은 ‘배 째라’ 식으로 버텼고, 애꿎은 피해자들이 다시 눈물을 흘려야 했다.
“땅 임대 18일만에 쓰레기 3000t 쌓여”… 신고해도 지자체 방관
처리비 떠안은 땅주인
주민 신고해도 지자체 “규정 없다”
市, 주인 대신 처리하고 5억 청구
“지자체가 쓰레기산 키워” 목소리
동아일보 취재팀은 문수용 씨를 포함해 불법 투기조직에 당한 피해자 5명을 인터뷰했다. 이 중 3명은 지자체에 의해 쓰레기 처리 책임을 떠맡은 상태였고, 나머지 2명도 투기 범죄자 재판이 끝나면 처리 명령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각 지자체에 확인한 결과 쓰레기 처리 의무가 부과된 땅주인 가운데 쓰레기산 발생에 책임이 없는 피해자는 전국에 최소 122명에 달했다.
○ ‘쓰레기산의 덫’에 빠진 사람들
2019년 4월 쓰레기 불법 투기 조직이 문수용 씨 소유의 경북 경산시 토지에 몰래 쌓아둔 폐기물의 모습. 일당은 18일 만에 쓰레기 약 3000t을 쏟아놓고 잠적했다. 문수용 씨 제공
2019년 3월 부부는 소유한 공장 부지를 손모 씨(62)에게 빌려줬다. 이후 부부의 땅에 약 3000t의 쓰레기가 깔리기까지 채 20일도 걸리지 않았다. 김 씨는 그날을 회상하며 몸서리쳤다. “갑자기 친척한테 전화가 온 기라. 우리 땅 앞을 지나가는데 누가 쓰레기를 가득 부어 놨다 안 카나.”
○ ‘쓰레기산의 덫’에 빠진 사람들
사진은 지난달 17일 문 씨와 아내 김순연 씨가 땅을 둘러보며 눈물짓는 모습. 투기자가 쓰레기를 치우지 않자 경산시는 쓰레기를 처리한 뒤 비용 4억9051만 원을 문 씨에게 청구했고, 문 씨가 이를 내지 못하자 땅을 압류했다. 문수용 씨 제공
시청은 부부에게도 상황을 알리지 않았다. 김 씨는 “(투기 상황을) 알고 있었으면서 왜 우리에게 말을 안 해줬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2020년 8월 국민권익위원회 역시 경산시에 “(부부에게 내린) 처분을 재검토하고, 꼭 내려야 한다면 시에서 무단 투기 사실을 알았음에도 조치를 소홀히 해 늘어난 양을 감안하라”고 의결했다. 하지만 경산시 측은 “폐기물 투기 현장 발견 후 땅주인에게 알려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권익위 의견도 법적 효력은 없다”며 묵살했다.
경북 영천시의 피해자 권모 씨(31) 역시 지자체의 미온적 대응 속에 쓰레기산이 1만7000t까지 불어난 경우다. 권 씨는 2019년 5월 자신의 땅에 불이 났다는 방송 뉴스를 보고 쓰레기산이 생긴 걸 처음 알았다고 했다. 부리나케 달려간 권 씨에게 마을 주민들은 “악취 때문에 민원을 계속 넣어 영천시, 면사무소와 회의까지 했는데 왜 안 왔느냐”며 핀잔을 줬다. 영천시가 쓰레기산 발생을 알면서도 땅주인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다. 권 씨는 시청에 “(투기 조직이) 쓰레기를 더 이상 반입하지 못하게 막아 달라”고 했지만 시는 “우리 권한이 아니다”라며 거부했다고 한다.
이후 영천시는 쓰레기를 치운 뒤 권 씨에게 구상금 33억여 원을 청구했다. 권 씨는 만삭의 몸으로 주민들에게 받은 탄원서를 제출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구상금을 내지 못해 땅은 압류됐고, 거액의 빚만 남았다. 권 씨는 “아파트 발코니를 보면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들 때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이를 지켜야 한다고 다짐하며 간신히 참았다”고 했다.
2017년 충북 음성군 원남면의 땅에 불법 투기된 3000t의 쓰레기 역시 처리 책임이 토지주에게 돌아갔다.
○ 막을 수 없었던 ‘조직범죄’
쓰레기 불법 투기 조직은 폐기물 배출 사업장이나 폐기물 처리업체로부터 싼 가격에 쓰레기를 처리해 주겠다며 돈을 받고 남의 땅에 쓰레기를 쏟아 버린다. 그렇다고 피해자들이 모두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충남의 불법 쓰레기 투기 피해자 A 씨(50)는 지난해 초 ‘마스크 공장’을 하겠다는 이에게 건물을 빌려줬다. 관리차 공장을 방문할 때마다 임차인은 “2층은 마스크 제조를 위한 ‘멸균실’이라 출입이 힘들다”며 1층만 보여줬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당시 2층은 이미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다. 투기조직은 얼마 지나지 않아 1층 역시 폐기물로 채운 뒤 도주했다.
피해자 이모 씨(46)의 땅을 빌린 임차인은 2019년 봄 담장을 설치해 안이 안 보이게 했다. 임차인은 “고가의 자재를 보관 중이라 도난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둘러댔지만 실제로는 안에 쓰레기가 쌓이고 있었다. 문 씨 부부 역시 폐기물 투기를 막기 위해 임대차계약서에 ‘고철·고물 폐기물 입고는 불허한다’는 특약사항을 추가했지만 투기 조직의 막무가내 범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 진화하는 투기 수법
폐기물 불법 투기 수법은 진화하고 있다. 광재(광산·제철소 등에서 이용하고 남은 찌꺼기)를 폐토사 형태로 분쇄한 뒤 뿌리거나 매립하는 경우 흙과 거의 구분되지 않아 발견해 내기 쉽지 않다. 2019년 3만4450t의 폐토사를 인천 강화군, 경기 김포시와 화성시, 안산시 일대 부지에 묻은 투기 조직이 적발됐다. 2015년에는 양화대교 공사 도중 생긴 건설폐기물 약 34t을 물속에 그대로 버려 만들어진 ‘수중 쓰레기산’이 발견됐다. 땅조차 빌리지 않고 말 그대로 무단 투기를 하는 경우도 여전하다. 2019년 한 투기 조직은 경남 함안군 고속도로 인근의 빈 공장에 폐기물 80t을 한꺼번에 쏟아 놓고 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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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영천=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
최미송 기자 cm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