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Millennium Hilton Seoul
The Last Christmas
출처 : 바이브랜드
첫 금강산 관광이 열렸던 1998년 겨울, 당시 호텔의 홍보실 팀장이던 우진구 씨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기획과 홍보에 참여한 ‘크리스마스 자선열차’ 이벤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 보람을 느낀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특급 호텔이지만 ‘보통 사람에게도 문턱이 낮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기 때문이죠. 연말이면 자선열차로 꾸며진 호텔 로비가 30년 가까이 인증샷 명소로 사랑받아왔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그의 목표는 성공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출처 : 바이브랜드
출처 : Millennium Hilton Seoul
웅장함을 채우는 디테일도 돋보입니다. 이탈리아산 대리석과 미국산 참나무 베니어 등 당대 최상의 소재뿐만 아니라 장인도 바다 건너왔습니다. 기둥에 있는 동판의 빛깔은 일본 장인이 하나하나 직접 닦아낸 결실이라고 합니다. 부분에도 소홀하지 않은 이 공간. 개관 39주년을 맞이한 오늘날에도 그 기품이 여전한 이유 아닐까요. 동시에 올해를 끝으로 다시 접할 수 없음에 아쉽기도 하고요.
남산은 알고 있다
출처 : Millennium Hilton Seoul
허용 용적률 중 약 58%만 활용한 호텔 대신 100% 꽉 채운 건물이 들어선다면 주인 입장에선 나쁘지 않은 선택이겠죠.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윤 추구가 항상 정답은 아닙니다. 값으로 환원할 수 없는 가치도 있는 법이니까요. 특히 건물이 아니라 건축이라면.
호텔 건축이 한창이던 1982년_출처 : 서울역사아카이브
건축사적 유산으로서 의의뿐만 아니라 이야기도 담겨 있습니다. 한국이 안팎으로 빠른 성장과 변화를 겪던 1980년대, 밀레니엄 힐튼 서울은 글로벌 호텔 체인 이름 아래 탄생한 5성급 호텔입니다.
1980년대 밀레니엄 힐튼 서울_출처 : 서울역사아카이브
이를테면 이 호텔은 1987년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통령 후보가 지명된 장소이자 1997년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와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후보의 연합이 이루어진 곳으로요. 더불어 IMF 구제 금융 협상과 최종 서명부터 한·중 수교 20주년 기념 신년 인사회 그리고 로버트 에이브럼스 전 한미연합사령관의 환송행사까지. 다이내믹했던 한국 근현대사의 산증인인 셈이죠.
과녁에 명중한 변화, 달라진 풍경
출처 : Millennium Hilton Seoul
2020년 2월 경 이진주 지배인이 합류할 당시 밀레니엄 힐튼 서울은 휴업 상태나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직원들의 복장마저 자유복으로 변경될 만큼 코로나19에서 촉발된 고요는 날이 갈수록 깊어졌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던가요. 호텔 역사상 전례 없는 영업 중단은 쇄신의 시발점으로 이어집니다.
강아지가 돌아다니는 특급 호텔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느냐부터 시작해서 객실 관리가 되겠느냐 등 내부적으로 우려도 있었지만 ‘마케팅적으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기에 더 이상 늦출 순 없다는 판단이었죠.
특히 자연 경관이 뛰어난 리조트가 아닌 도심에서 방문객의 발길을 잡기 위해서 말이죠. 파격적인(?) 호텔의 변화는 자녀를 둔 3040에게 적중했습니다. 젊은 피가 수혈된 호텔은 보다 젊어졌고요.
서울의 시그니처 아이템으로 구성된 1983 애프터눈 티 세트_출처 : Millennium Hilton Seoul
1987년 국내 호텔 업계에서 최초로 선보인 이탈리안 레스토랑, 일폰테(1987년 오픈)도 ‘힙’하게 변신한 다이닝입니다. 할리 데이비슨을 들여와 클래식한 이태리 느낌을 아메리칸 스타일로 바꾸면서 훨씬 젊고 동적인 공간으로 말이죠. 아쉽게도 11월 5일부로 두 곳은 운영이 종료됐습니다.
참고로 카페 395는 11월 21일부터 조식 뷔페와 단품 요리로 축소되며, 오크룸은 11월 26일까지만 영업합니다. 호텔 역대 시그니처 아이템을 담은 ‘1983 애프터눈 티 세트’를 즐길 수 있는 실란트로 델리는 호텔 영업 마지막 날까지 손님을 맞이한다고 하네요.
안녕 그리고 다시 안녕
출처 : 바이브랜드
그런 의미에서 글로벌 빅 플레이가 가득해진 지금도 밀레니엄 힐튼 서울은 여전히 ‘현역’입니다. 지난 40여 년 간 서울에서 당연하게 여겨졌던 이곳에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었으니까요. 밀레니엄 힐튼 서울의 마지막이 될 2022년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익숙함으로 둔해진 감각을 깨워볼 때가 아닐까요. 매일 오고 가는 출퇴근길, 남산의 달라진 풍경에 아쉬워할 이는 기자만은 아닐 테니.
인터비즈 이순민 기자 royalblu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