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5년 전 불법 폐기물 투기업자가 충북 음성군 원남면 외딴 산기슭에 버리고 도주한 쓰레기산의 최근 모습. 음성군이 붙잡힌 투기범에게 처리 명령을 내렸지만 쓰레기는 치워지지 않았고, 처리 책임은 땅 주인에게 넘어갔다. 이곳에 불법 투기된 3000t의 쓰레기를 치우는 데는 약 10억 원이 들 것으로 추산된다. 음성=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
불법 투기된 쓰레기 처리에 들어가는 수십억 원대 비용이 애꿎은 땅주인들에게 부과되고 있다. 수백, 수천 t의 폐기물을 몰래 버리고 잠적한 투기범 대신 토지 소유자들에게 처리 비용을 물리는 행정조치가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쓰레기를 치운 뒤 땅주인에게 청구한 구상금 규모가 지난 3년간 337억 원에 이른다. 쓰레기 산이 쌓이고 있는 줄도 몰랐던 이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청구서 폭탄’이다.
동아일보 취재 결과 시골에 노후 대비용으로 땅을 샀던 한 노부부는 5억 원 가까운 구상금을 요구받고 결국 땅을 압류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33억 원의 구상금을 내지 못해 빚더미에 오른 이도 있다. 쓰레기 처리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형사 고발까지 당한 사례도 여럿이다. 이들이 앞으로 떠안아야 할 비용까지 합치면 총부담액이 최대 1000억 원에 이른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현행 폐기물관리법은 쓰레기 투기범뿐 아니라 토지 소유자까지 폐기물 처리 명령 대상으로 규정해 같은 책임을 지우고 있다. ‘배 째라’ 식으로 버티는 투기범 대신 상대적으로 비용 청구가 쉬운 땅주인에게 청구서가 남발되는 근거다. 2019년 외신 보도로 국제적 망신을 산 ‘의성 쓰레기산’ 사건 이듬해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아직까지 논의에 진전이 없는 상태다.
폐기물 무단 투기는 악취와 분진을 유발하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범죄다. 이를 제때 막지 못하고 뒤늦게 무고한 땅주인들에게 처리 비용을 전가하는 식의 안일한 행정으로는 점차 수법이 진화하고 있는 불법 투기 범죄에 대응할 수 없다. 정부는 단속을 강화하고 폐기물관리법의 개정안 처리도 서둘러야 한다. 비용 환수에 급급해 법 개정에 미적대는 사이 어딘가에는 쓰레기산이 쌓여가고 억울한 땅주인들의 피해 또한 계속 불어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