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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다리 복합보행, 자동-보조-수동 조절로 빠른 회복 돕는 ‘재활특급’[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입력 | 2022-12-10 03:00:00

보행재활 로봇 개발 ‘휴카시스템’… 모든 동작 자동수행 외국산과 달리
수동 기본으로 유산소운동 효과… 영상기기로 인지능력 향상도 꾀해
재활 연구원 경험 살린 김형식대표… 운동기능 초점 로봇 착안해 창업
제품값 절반으로 병원부담은 줄여… 재활 원격지도 플랫폼 구축 계획



김형식 휴카시스템 대표이사가 자사가 개발한 보행 재활 로봇 ‘GTR-A’에 탑승해 훈련 대상자의 운동 능력에 따라 자동으로 운동 강도를 조절해 주는 기능을 설명하고 있다. 환자들은 중심을 유지해 주는 하니스를 착용하고 이용한다. 팔과 다리의 재활 훈련을 동시에 할 수 있다. 세종=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뇌중풍(뇌졸중)으로 병원을 가게 되면 막히거나 터진 뇌혈관에 대한 응급 치료가 시행된다. 이후 중요한 과정은 재활훈련이다. 재활의학계에 따르면 환자에게 무리가 되지 않는다면 재활훈련은 3일 정도 지난 후 가급적 이르게 시작하는 것이 좋다. 이후 6개월까지 뇌 기능의 회복과 재활훈련 효과가 맞물려 다친 뇌 부위를 대신할 다른 뇌 부위가 빠르게 발달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뇌의 가소성’을 활용해 환자가 최대한 다치기 이전 상태에 가까운 운동 기능을 회복하도록 돕는 것이다.

휴카시스템(대표이사 김형식)은 로봇 기술을 활용해 보행 재활 훈련이 필요한 환자의 빠른 회복을 돕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2019년 설립됐다. 보행 재활 로봇은 뇌중풍뿐만 아니라 심혈관계 질환을 앓거나 치매증상, 발달장애 등을 가진 이들에게 필요하다. 기존 보행 재활 로봇은 사람이 바르게 걷는 자세를 익힐 수 있도록 발판과 관절지지 부위를 갖추고 있는데, 모터 등을 이용해 자동으로 구동토록 돼 있다. 환자가 아무런 힘을 주지 않아도 구동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운동 효과가 떨어진다. 휴카시스템은 오히려 수동을 기본으로 하는 로봇을 구상해 자동과 보행보조, 수동기능을 자동으로 조절해주는 방식으로 보행 재활 로봇의 치료 효과를 높이는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환자의 “오랜만에 땀 흘렸다”는 말이 창업 계기

창업자인 김형식 대표이사(47)는 서울과학기술대에서 산업디자인전공으로 학사 학위를, 유니버설디자인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5년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그 전인 2013년 국립재활연구원의 재활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한 경험이 휴카시스템 창업의 밑거름이 됐다. 재활연구소 연구원으로 있을 당시 휴카시스템 보행 재활 로봇의 전신인 보행기기를 만들어 환자의 재활치료에 적용한 경험이 있다. 기존의 보행 재활 로봇의 단점을 개선하는 연구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김 대표는 “유럽산 보행 재활 로봇은 단가가 몇억 원대에 달해 보급이 잘 되지 않았고, 이에 따라 환자나 장애인들이 접할 기회도 적었다. 그리고 모든 관절마다 모터가 달려 모든 동작을 자동으로 수행하기 때문에 물리치료사들이 환자들을 운동에 집중시키는 데도 어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연구를 주도한 김 대표는 오히려 수동을 기본으로 한 재활보행을 창안해냄으로써 재활 로봇 분야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수동을 기본으로 설계함에 따라 기존 제품과 달리 환자의 능력에 따라 자동부터 보행보조, 수동보행 등으로 단계를 조절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개발원가도 낮춰 당시 외국산 제품의 30% 수준으로 보행 재활 로봇을 만들었다. 김 대표는 “당시 제품을 사용해본 환자가 ‘다리가 불편해진 지 수년 만에 처음 땀 흘리는 운동으로 기분이 좋아져 너무 기쁘다’고 말해 보행 재활 로봇을 더 발전시켜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고 했다. 이후 2016∼2019년 서울과기대에 연구교수로 재직하면서 여러 연구 프로젝트 등을 통해 보행 재활 로봇을 업그레이드했고, 2019년 2월 휴카시스템을 창업했다.
○“유산소 운동을 더해 치료 효과 높일 것”
휴카시스템의 대표적인 보행 재활 로봇은 크게 3종류다. 팔과 다리의 복합 재활 훈련을 돕는 로봇(GTR 시리즈)은 개발을 마치고 판매 중이다. 전기 자극으로 재활 훈련 효과를 더 높일 수 있는 로봇(HUCA-Go·휴카고)은 내년부터 판매를 시작한다. 휴카고의 경우 의료보험 수가 적용이 가능하도록 개발해 환자들이 더 적은 부담으로 재활훈련을 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휴카고는 대당 3억∼4억 원씩 하는 외산 장비와 비교했을 때 그 절반 이하의 가격이 될 것 같다”며 “기기를 도입할 병원의 부담도 작아질 것”이라고 했다. 운동 기구에 좀 더 초점이 맞춰진 로봇(GTR-T)도 개발 중인데, 재활운동센터나 집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한 로봇이다.

휴카시스템의 모든 제품은 기본적으로 유산소 운동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땀을 흘리는 유산소 운동이 충분히 동반된 보행 재활 훈련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환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뇌중풍과 파킨슨병을 앓는 환자에게 유산소성 운동 프로그램을 적용했더니 심장과 호흡, 체력이 좋아졌다는 연구와 보행이나 운동 능력이 향상됐다는 연구 결과 등이 있다. 김 대표는 “자체 시험 결과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고, 팔과 다리의 재활 훈련을 모두 돕는 로봇 2대가 국내 대형병원 2곳에 도입돼 임상시험도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 글로벌 보행 재활 로봇 시장 “내년이면 2조 원대”
5일 세종시 산학연클러스터지원센터에 있는 휴카시스템을 찾아 보행 재활 로봇을 체험했다. 자동과 주행보조, 수동보행 모드 등으로 선택해 훈련을 하면서 모니터 화면이나 가상현실(VR) 기기로 숲속 길을 보며 달릴 수 있었다. 더 빨리 걸어보자고 마음을 먹고 조금씩 다리에 힘을 주니 로봇의 구동 속도에 맞춰 조금씩 빨라졌다.

휴카시스템에 따르면 보행 재활 대상자가 될 수 있는 뇌중풍이나 심혈관계 질환, 파킨슨병을 앓는 환자와 발달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은 세계적으로 6억6000만 명이나 된다. 뇌중풍으로만 매년 약 500만 명이 장애를 겪는다. 이에 따라 보행 재활 로봇 시장도 계속 커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 조사기관 글로벌마켓인사이트 등에 따르면 보행 재활 로봇 시장은 2018년부터 2024년까지 연평균 19.3%씩 시장이 커져 2023년 말이면 18억 달러(약 2조34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휴카시스템은 재활 로봇에 장착한 모니터와 증강현실(AR) 기기를 통해 앞으로 여러 가지 시뮬레이션 기능도 제공할 예정이다. 예컨대 집중적인 치료와 기본적인 재활훈련을 받고 퇴원할 환자가 자신의 집 근처에 있는 시장까지 갈 수 있는지 등을 영상 기기를 통해 미리 체험해 볼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자신이 가보고 싶은 유명 여행지를 선택해 걸어서 여행하는 게 가능한지도 가늠해볼 수 있다. 김 대표는 “영상 기기를 활용해 여러 가지 인지능력 향상 게임을 하면서 재활훈련을 하는 방식도 개발하고 있다”고 했다.
○비대면 재활 운동 플랫폼까지 개발
휴카시스템은 장기적으로는 비대면 재활운동 플랫폼까지 구축할 계획을 갖고 ‘휴카버스’라는 온라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운동 기능에 초점이 맞춰진 GTR-T 로봇을 임대하는 방식으로 필요한 가정에 보급한 뒤 의료기관과 협업해 원격으로 환자의 자세 및 운동 상태 등을 모니터링하고 지도하는 방식이다. 심박수 측정 센서와 보행 동작 측정 센서 등을 낙상방지 하니스와 함께 공급하고 환자의 휴대전화를 통해 교신한다. 비교적 가벼운 재활이 필요한 이들을 대상으로 한 플랫폼이다.

휴카시스템은 2025년 중반까지 GTR 시리즈 및 휴카고를 중심으로 한 의료 기기 분야, GTR-T를 중심으로 한 재활 운동 기기 분야, ‘휴카버스’를 중심으로 한 비대면 재활 운동 플랫폼을 완벽하게 만든 뒤 세계 시장으로도 진출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로봇이라고 하면 딱딱한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휴카시스템은 로봇 기술을 사람을 돌보는 분야에 집중해 ‘따뜻한’ 로봇과 시스템을 만드는 회사로 남고 싶다”고 했다.




세종=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