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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감 퇴직 후 연금 월 200만 원 받던 ‘신촌 모녀’에 무슨 일이?

입력 | 2022-12-10 12:56:00

유령처럼 생활하다 쓸쓸한 죽음… 소득 기준으로 하는 복지지원 한계 개선해야



12월 6일 기자가 찾은 서울 서대문구 ‘신촌 모녀’의 생전 집 주변은 정적이 흐르는 분위기였다. [이슬아 기자]


서울 서대문구 지하철 2호선 신촌역 인근 먹자골목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11월 23일 사망한 채로 발견된 모녀는 극심한 생활고를 겪은 것으로 추정된다. 수개월째 밀린 공과금과 월세, 제대로 된 음식 없이 텅 빈 냉장고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사건 발생 2주 뒤인 12월 6일 오전 9시 반쯤 기자가 찾은 모녀의 생전 집 주변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정적이 흘렀다. 현관문 앞에 붙어 있던 전기요금 미납 고지서는 모두 정리됐고, 건물 1층 공용우편함에도 다른 집 우편물만 쌓여 있었다.

죽음 이후 ‘신촌 모녀’로 불리게 된 모녀는 이곳에서 ‘유령’처럼 생활했다. “자주 오는 손님은 기억하는 편인데 그중 모녀는 없었다”(편의점주 A 씨), “뉴스로 접하고 곰곰이 생각해봐도 누군지 모르겠더라”(부동산공인중개사 B 씨)는 반응처럼 주변 이웃들은 모녀를 알지 못한다고 했다. 국가도 이들 모녀의 존재를 찾아내지 못했다. 모녀는 지난해 11월 서울 광진구에서 서대문구로 이사했지만 전입신고를 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7월 위기가구로 분류됐음에도 지방자치단체(지자체)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국가와 지자체가 신촌 모녀를 먼저 파악했다 해도 중학교 교감으로 퇴직한 뒤 월 200만 원 넘는 연금을 수령했던 어머니의 상황 등으로 받을 수 있는 복지지원이 제한적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정부가 ‘특정 기준’ 위주로 복지지원 체계를 짜기보다 더 폭넓고 탄력적인 긴급지원 체계를 마련해 위기가구를 찾아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무지·수치심 혹은 포기
신촌 모녀는 그간 긴급생계비 등 지자체에 복지지원을 요청한 기록이 전무하다. 외부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신촌 모녀처럼 위기가구가 스스로 고립을 택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원인은 크게 세 가지”라면서 “지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개연성이 첫 번째, 수치심이나 낙인감 때문에 지원 신청을 안 했을 개연성이 두 번째, 절차가 복잡하거나 자격 기준이 엄격해 ‘전에 해봤는데 안 되더라’면서 지레 지원받기를 포기했을 개연성이 세 번째”라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고립된 위기가구를 발견하더라도 실제 이들을 지원받게 하기까지 어려움이 크다고 토로한다. 12월 6일 기자가 만난 신촌동주민센터 관계자는 “지원을 거부하는 위기가구가 예상 외로 많다”며 “내밀한 사정을 드러내는 데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어 최대한 조심스럽게 권유하곤 하지만 그래도 당사자가 싫다고 하면 뾰족한 (지원)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주민센터 입장에서는 신청 내역이나 개인정보 수집 동의 여부 등 전산 기록을 반드시 남겨야 하기에 임의로 지원을 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신촌 모녀는 정부의 긴급 복지지원 대상자 기준에도 부합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긴급생계비 및 긴급의료비 지원 대상 선정 시 가구원의 소득이 주된 척도이기 때문이다. 모녀 중 어머니는 2006년 경기 지역 한 중학교에서 교감으로 퇴임해 월 200만 원 넘는 연금을 수령해왔다. 적잖은 연금 수령액에도 궁핍한 생활을 한 이유나 총 채무액과 관련해서는 현재 경찰이 수사 중이다. 이경민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팀장은 “소득 외에 담당 공무원의 방문조사를 토대로 지원이 가능하지만 이를 면밀히 검토할 주민센터 인력은 만성 부족 상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읍·면·동 찾아가는 보건복지팀’ 공무원 1명이 담당해야 하는 위기가구는 2018년 45.2명에서 지난해 113.4명으로 급증했다.
위기가구여도 절반이 지원 못 받아
위기가구임에도 복지지원 기준에 미달하는 사례는 신촌 모녀 외에도 많다.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공받은 ‘복지 사각지대 대상자 지원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체 위기가구 133만9909명 중 ‘복지 서비스를 받지 못한 대상자’는 67만6035명으로 ‘복지 서비스를 받은 대상자(66만3874명)’보다 많았다. ‘복지 서비스를 받은 대상자’ 가운데서도 긴급생계비·의료비 혜택을 받은 위기가구(1만9664명)는 전체의 3%에 불과했다.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에 편입된 인원도 각각 2만8611명(4.3%), 1만1180명(1.7%)뿐이었다.

생활을 정상화하기 위해 파산이나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것도 신촌 모녀 같은 위기가구에는 선택지가 되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일차적으로 파산/개인회생을 신청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파산/개인회생 신청 시에는 변호사 선임비를 포함해 평균 200만~300만 원이 소요된다. 이에 법원은 소송비용을 낼 자금 능력이 부족한 사람을 대상으로 재판에 필요한 비용 납부를 면제하거나 유예해주는 ‘소송구조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다만 기초생활수급자, 장애인 등 본인의 무자력을 입증할 수 있는 사람에 한한다. 월 200만 원대 연금을 수령하는 신촌 모녀는 이 같은 혜택을 받지 못했을 공산이 크다.

또 다른 가능성은 개인회생 신청 후 모녀의 생활고가 더 심해졌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박현근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 회장은 “연금을 수령한다면 개인회생을 신청해 최저생계비 110만 원(1인 기준)을 제외한 90만 원을 3년간 납부해 채무를 해결할 수 있었을 것 같다”면서도 “딸이 성년자이기에 부양가족에 포함되지 않아 2인 기준으로 최저생계비를 책정받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경우 소득의 절반가량인 90만 원을 채무 변제에 사용하지만 기존과 마찬가지로 총소득은 200만 원으로 집계되기 때문에 정부나 지자체의 복지지원을 받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소득 위주로 돼 있는 위기가구 지원 기준을 대폭 넓혀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소득을 기준으로 한 현금성 복지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위기가구는 어느 정도 소득이 있어도 채무 초과 상태이거나 피치 못할 가족사가 있는 등 개별적인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단일 기준으로 지원 여부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사람의 손길이 닿는 사회 서비스를 강화하는 게 중요해 보인다”며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웬만한 중산층 이하는 사회 서비스 혜택을 볼 수 있도록 지원 대상을 확대해 예방이 중심이 되는 복지 로드맵을 그려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슬아 기자 island@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68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