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열린 ‘2023 동아일보 신춘문예’ 예심. 안철민기자 acm08@donga.com
“경기 불황에 이태원 핼러윈 참사 등의 영향인지 삶의 고달픔과 슬픔을 담은 응모작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위기 속에서도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으려하는 응모자들의 의지가 엿보였다.”
8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열린 ‘2023 동아일보 신춘문예’ 예심에 참여한 심사위원들의 총평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3년 가까이 이어졌고, 안타깝고 답답한 사건들이 이어진 탓인지 힘든 한 해의 심리가 응모작들에 반영됐다. 하지만 문학을 등불 삼아 희망을 포기하지 않은 긍정적인 작품들도 많았다.
세부적으로는 중편소설 236편, 단편소설 685편, 시 5064편, 시조 529편, 희곡 75편, 동화 275편, 시나리오 48편, 문학평론 27편, 영화평론 31편이었다.
예심 심사위원은 △중편소설 백가흠 정한아 소설가, 정여울 문학평론가 △단편소설 김성중 김금희 손보미 소설가, 강동호 문학평론가 △시 서효인 오은 시인 △시나리오 정윤수 영화감독, 조정준 영화사 불 대표로 구성됐다.
중편소설 부문에서는 공상과학(SF) 분야 작품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최근 문학·출판계 흐름을 반영한 현상으로 신춘문예 응모작의 장르가 폭넓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정한아 소설가는 “인공지능(AI)이 급속도로 발달한 미래, 실존 인물이 아닌 소프트웨어로 만든 가상의 인간인 ‘버추얼 휴먼’이 등장하는 소설이 눈에 띄었다”며 “바이러스와 전염병이 창궐하는 미래를 그린 작품처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좀 더 심도 있게 해석한 SF 작품도 있었다”고 했다.
이날 심사위원들은 “문학계의 바람을 반영하듯 SF, 대체역사물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많았다”며 “최근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작품도 눈에 띄었다”는 평을 남겼다. 안철민기자 acm08@donga.com
단편소설 부문에서는 현 세태에 대한 날카로운 포착이 두드러졌다. 주거불안에 시달리는 청년을 그리거나 오토바이를 끌고 배달을 다니는 노동자를 다루는 작품이 적지 않았다.
김성중 소설가는 “‘갓생’(신의 경지에 이를 만큼 모범적으로 산다는 뜻)으로 성실하게 지내다가 ‘번아웃’(신체적 정신적 탈진)에 빠져 모든 것을 포기하는 청년의 자화상을 담은 작품도 있었다”며 “혼란스러운 사건이 많았던 올해의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시 부문에서는 재난 상황이 배경인 작품이 유난히 많았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를 은유적으로 다루거나, 가상의 재난을 가정해 상상한 작품도 있었다.
오은 시인은 “재난을 주관적인 감정이 아닌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여주려는 시도가 많았다”며 “현실 문제를 가상에서 다뤄 문학적 효과를 극대화하려 노력한 실험적 작품에 눈길이 갔다”고 말했다.
조정준 영화사 불 대표는 “가족의 해체, 청년의 방황을 담은 작품도 있었다”며 “소재가 이색적이면서도 작품성이 탄탄한 응모작이 많아 당선작이 기대된다”고 했다.
예심 결과 중편소설 11편(11명)을 비롯해 단편소설 13편(13명), 시 65편(12명), 시나리오 8편(8명)이 본심에 올랐다. 시조 희곡 동화 문학평론 영화평론은 예심 없이 본심으로 당선작을 정한다. 당선자에게는 이달 말 개별 통보하며, 당선작은 동아일보 내년 1월 2일자 지면에 소개된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