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서 이런 감동은 없었다” 월드컵 황희찬 ‘극장골’에 영국 대표팀 주장 감격 칭찬 만발 “이강인 왼발은 악마, 실력만큼 외모 특급 조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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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카타르 월드컵 한국-브라질전에서 백승호 선수의 중거리슛 모습. 한국은 브라질에게 패했지만 역대 2번째 원정 16강 진출의 성과를 이뤘다. 동아일보
(한국은 온전한 자부심으로 월드컵을 끝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일정을 모두 마친 한국 축구대표팀에 대한 평가는 매우 좋습니다. 미국 스포츠매체 ESPN은 한국팀을 결산하면서 “pride intact”라는 평가를 내렸습니다. “자부심을 지켰다”는 의미입니다. ‘intact’는 ‘온전하게 유지하다’는 뜻입니다.
자부심의 근거로 우루과이전 무승부, 포르투갈전 역전승, 가나전 2골 기록 등 모두 강팀들을 상대로 거둔 성과라는 점을 꼽았습니다. 브라질에게 1 대 4로 패하기는 했지만 이번 대회에서 브라질에게 첫 실점을 안겨줬습니다. 무엇보다 “새롭게 주목받는 얼굴들”(newly-recognizable faces)을 발굴한 것이 가장 큰 수확이라고 했습니다. 이강인 선수에 대해서는 왼발이 “악마 같다”(devilish)고 칭찬했습니다. 황희찬 선수에 대해서는 “부담 백배 상황에서도 결과를 낸다”(perform under the brightest of lights)고 했습니다. 잘생긴 외모로 주목받은 조규성 선수에 대해서는 “조만간 해외로 나갈 것”(earn a move abroad in the near future)라고 전망했습니다.
밤잠을 설쳐가며 응원했던 한국인들에게는 각자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있을 것입니다.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무엇이었는지 알아봤습니다.
월드컵 포르투갈전에서 승리한 뒤 스마트폰으로 우루과이-가나전을 지켜보는 한국 선수들. AP 뉴시스
(긴 7분 동안 고통스럽게 초침이 재깍거리며 지나갔다 한국 선수들은 우루과이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환호가 분출했다)
외국에서는 가장 감동적인 장면으로 한국 선수들이 포르투갈전 승리 직후 그라운드에 모여 우루과이-가나전을 스마트폰으로 시청하는 순간을 꼽습니다. 이 장면에 모든 드라마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외국 언론이 한국팀을 설명하면서 가장 많이 쓴 단어는 ‘togetherness’(투게더니스)입니다. ‘단합’ ‘결속’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선수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스마트폰을 시청하는 장면은 ‘Korean togetherness’의 상징이 됐습니다. 미국이나 유럽 선수들이었다면 뿔뿔이 흩어져서 보거나 아예 보지도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외국 전문가들은 입을 모읍니다.
영국 매체 기디언은 한국 선수들에게 감정이입을 해서 우루과이전이 끝나기까지 기다린 순간을 “seven long minutes”(길고 긴 7분)라고 묘사했습니다. 흔히 더딘 시간의 흐름을 말할 때 “시계 초침이 재깍거리고 지나갔다”고 합니다. 영어로는 “the seconds ticked by”라고 합니다. 당시 한국 선수들의 마음을 “excruciatingly”(고문과도 같은 고통)라고 했습니다. 고통에는 단계가 있습니다. 많이 쓰는 ‘painful’은 일반적인 수준의 고통이고, ‘excruciating’은 ‘극심한 고통’을 말합니다. ‘excruciate’(익스크루시에이트)는 원래 ‘고문하다’라는 뜻입니다. 마침내 7분이 지나고 16강 진출 확정의 순간을 ‘eruption’(폭발)이라는 단어로 표현했습니다.
월드컵 한국-포르투갈전에서 손흥민 선수가 포르투갈 선수들의 집중 수비를 뚫는 모습. 동아일보
(그는 가장 날카로운 수준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는 굴복하지 않았다)
손흥민 선수의 부상 투혼은 외국에서도 화제가 됐습니다. 손 선수는 우루과이전과 가나전까지만 해도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소속팀 경기 때 당한 부상 때문에 경기력이 저하됐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미국 폭스스포츠는 손 선수의 컨디션에 대해 “가장 날카로운 수준(at his sharpest)은 아니다”고 평가했습니다. ‘at’ 다음에 최상급이 나오면 ‘최고의 상태’를 뜻합니다. “I’m not at my best in the morning”이라고 하면 “나는 아침에 최상의 상태가 아니다,” 즉 “아침형 인간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손 선수는 최상의 컨디션이 아니었음에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포르투갈전에서 결승골 도움을 기록했습니다. ‘포기하다’에는 ‘give up’과 ‘give in’이 있습니다. 어느 경우에 어느 것을 써야 하는지 헷갈리기 쉽습니다. ‘give up’은 미래에 더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없어서 ‘포기하다’는 뜻이고, ‘give in’은 현재의 반대나 악조건에 부딪혀서 ‘굴복하다’는 뜻입니다. ‘포기’와 ‘굴복’의 차이이고, 미래와 현재라는 시점의 차이이기도 합니다. 부정문을 만들 때 ‘give up’은 ‘not’을 붙여서 “don’t give up”(포기하지 마)이라고 하면 되지만 ‘give in’은 앞에 ‘refuse to’를 수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항복을 거부하다‘라는 뜻이 됩니다.
월드컵 한국-포르투갈전에서 결송골을 넣은 황희찬 선수. 동아일보
(우리가 여기 앉아서 “잘 해봐, 닥치는 대로 해봐, 최선을 다해봐”라고 말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하지만 선수들은 인내심을 가졌고, 협력했고, 절제력이 있었다)
BBC방송에서 한국-포르투갈전을 해설한 앨런 시어러 전 영국 축구대표팀 주장은 황희찬 선수의 ‘극장골’이 터진 순간 이렇게 말했습니다. “What other sport evokes emotion like that.”(그 어떤 다른 스포츠가 이런 감동을 자아내겠는가)
시어러 해설가의 발언 중에 재미있는 표현들이 여러 개 나옵니다. 부엌의 싱크대는 고정돼 있습니다. ‘throw a kitchen sink’(싱크대를 뽑아 던진다)는 것은 ‘다급할 때 닥치는 대로 모든 시도를 해본다’는 의미입니다. ‘put best foot forward’(최선의 발을 내딛다)는 ‘최선을 다하다’는 뜻입니다. 그라운드에서 뛰지 않는 관중은 ‘이래라 저래라’하는 훈수를 두기는 쉽지만 한국 선수들은 급한 상황에서도 조직적으로 플레이했다는 의미입니다.
명언의 품격
월드컵 포르투갈-스위스 16강전에서 선발에서 제외로 벤치에 앉아있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선수(오른쪽 두 번째)와 페르난두 산투스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가운데). AP 뉴시스
페르난두 산투스 포르투갈 국가대표팀 감독은 처음에는 호날두 선수를 두둔했다가 교체 당시 영상을 돌려본 뒤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영상에서 호날두 선수는 조규성 선수와 말다툼뿐만 아니라 산투스 감독의 교체 결정에 대한 불만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I didn’t like it, not at all. I really didn’t like it.”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전혀.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산투스 감독은 교체 영상을 봤는지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이번 대회 중에 가장 유명한 발언이 됐습니다. 강한 어감 때문입니다. 한국말로 해석된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공손한 반대 의사처럼 들리지만 원래 “I don’t like”는 직설적이고 무례한 화법입니다. 그래서 영어권에서는 “I don‘t like”를 예의를 갖춰 돌려 말하는 각종 대체 화법이 발달했습니다. “I don’t appreciate” “I’m not into” “I’m not crazy about” 등을 대신 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산투스 감독은 “not at all”(전혀) “really”(정말)까지 추가한 것을 보면 호날두 선수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습니다. 이후 포르투갈-스위스 16강전에서 호날두 선수는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됐습니다.
실전 보케 360
조 바이든 대통령이 철도파업 저지법안에 서명하는 모습. 서명 후 연설을 통해 미국 경제 회복을 강조했다. 백악관 홈페이지
“The wealthy are still doing very well while the middle class and the poor are having a shot.”
(부자들은 잘 하고 있고, 중산층과 가난한 이들은 성공의 기회를 얻고 있다)
영어에서 ‘shot’(샷)은 다방면으로 활용됩니다. 원래 ‘발사’라는 뜻이지만 ‘chance’(기회), ‘attempt’(시도)라는 의미가 강합니다. ‘have a shot’은 ‘기회를 얻다’라는 뜻입니다. ‘have a shot at life’는 ‘인생에서 기회를 얻다’가 됩니다. ‘take a shot at’이라는 말도 많이 씁니다. 원래의 ‘발사’라는 뜻에 가깝게 ‘저격하다’ ‘겨누다’라는 뜻입니다. 상대를 비판하거나 조롱할 때 쓰는 말입니다. “He took a shot at me at the meeting”이라고 하면 “그는 모임에서 나를 집중 공격했다”가 됩니다.
이런 저런 리와인드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장기 연재된 ‘정미경 기자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 칼럼 중에서 핵심 아이템을 선정해 그 내용 그대로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오늘은 2022년 2월 14일 소개된 베이징 동계올림픽 논란입니다. 스포츠와 정치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카타르 월드컵도 정치적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외국인 노동자 착취와 여성 성소수자 인권침해 문제가 제기됐습니다. 인권을 중시하는 미국에서는 카타르 월드컵을 보이콧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고, 경기장 건설 등에 동원된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폭로하는 기사들이 많이 보도됐습니다. 미국은 올해 초 베이징 동계올림픽 때도 중국의 인권침해를 문제 삼아 정부대표단을 보내지 않는 외교 보이콧을 택했습니다.올해 2월 열린 베이징 겨울올림픽의 개회식 장면. 동아일보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0213/111763115/1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에서 불거진 중국의 편파 판정과 ‘한복 논란’ 등으로 반중(反中) 감정이 뜨겁습니다. 미중 갈등 속에서 정부 대표단을 파견하지 않는 외교 보이콧을 택한 미국도 이번 올림픽에 대한 반감이 누구보다 강합니다.
“American athletes should bite their tongue before criticizing human rights violations in China.”
(미국 선수들은 중국의 인권침해 문제를 비판하고 싶어도 꾹 참아 달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수차례에 걸쳐 자국 선수단에 “중국에서 입조심을 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선수들이 현지에서 중국 인권 탄압을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가 신변 안전에 위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소 중국 인권 문제를 강하게 비판해온 펠로시 의장이 자제를 당부할 정도니 이번 올림픽의 공정성과 자유에 대한 미국인들의 기대치가 얼마나 낮은지 알 수 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꾹 참는 것을 ‘bite the tongue’(혀를 깨물다)고 합니다.
“FBI warns Team USA to use burner phones at the Olympics.”
(FBI는 미국 선수단에게 임시 휴대전화를 사용할 것을 강력 권고한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올림픽 출전 선수들에게 “개인 휴대전화를 가져가지 말라”는 경고문을 홈페이지에 올렸습니다. CNN 등에 따르면 FBI는 선수들에게 사이버 공격 위험을 이유로 개인 폰 대신 ‘burner phone’(버너폰)을 가져갈 것을 권고했습니다. 미국 수사 드라마에서 “it’s a burner”라는 대사가 종종 등장합니다. “대포폰”이라는 뜻입니다. 버너폰은 대포폰을 포함해 임시로 쓰는 휴대전화를 총칭하는 말입니다. 유심 칩을 한 번 쓰고 태워 버린다(burn)는 의미에서 출발했습니다.
“That speaks volumes to the ability of sport to be a force for unity.”
(스포츠가 화합의 상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중국 대표로 출전한 여자 스키 선수 아일린 구는 금메달을 딴 뒤 기자회견에서 국적에 대한 질문을 집중적으로 받았습니다. 하지만 국적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말을 돌려 논란이 됐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지지를 동시에 받는 나는 스포츠가 화합의 상징이 될 수 있다는 증거가 된다”라는 답변이었습니다. 미국인들이 즐겨 쓰는 표현 ‘speak volumes’(볼륨을 말하다)는 ‘보여주다’ ‘증거가 되다’는 뜻입니다. ‘volume’은 ‘소리’ ‘음량’이라는 뜻도 있지만 ‘speak volumes’의 ‘volume’은 ‘용량’ ‘부피’의 뜻입니다. ‘많은 양을 말하다,’ 즉 ‘여실히 보여준다’는 뜻입니다. 교묘한 동문서답에 그렇지 않아도 구 선수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미국에서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