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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론/강준영]중국의 ‘백지 시위’가 남긴 것

입력 | 2022-12-13 03:00:00

시진핑에 힘 실어줬던 ‘MZ세대’가 시위 주축
독재 반대에 자유 구호, 이젠 권력 감시자 돼
대중의 정책 불신, 시진핑 체제 위기 요소로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HK+국가전략사업단장


기존의 중국 항의 시위와는 다르게 시진핑 ‘신시대(新時代)’의 최대 지지 세력인 청년들이 ‘백지(白紙)’를 들고 최근 항의에 나섰다. 여기에 반체제나 반정부 인사가 아닌 일반인들이 시위에 동참했다. 얼마 전 3연임을 확정하고 새로운 중국 건설을 천명한 시진핑 체제가 위기를 맞고 있다.

중국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항의 시위가 자주 발생한다. 중국 당국도 공산당과 정부의 이데올로기를 직접 겨냥하지 않는 민생 시위에 대해서는 과도한 진압을 자제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항의 시위는 극단적인 제로 코로나 정책 반대로 시작했지만 시진핑 체제와 공산당 독재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의 장례식이 겹치자 제2의 톈안먼(天安門) 사태 같은 대규모 정치 항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결과적으로 중국 당국의 항의 시위 원천 봉쇄, 장쩌민 전 주석을 추모하는 중국 당국의 장중한 애도 분위기 조성과 시 주석의 톈안먼 사태에 대한 언급으로 민중들의 저항 의지는 급격히 식었다. 중국 당국도 7일 거의 ‘위드 코로나’ 단계 진입에 가까운 10개 항의 제로 코로나 방역 완화 정책을 발표하면서 직접적인 민심 달래기에 나섰다. 일단 중국 민중들이 완화된 방역 정책에 한숨 돌리면서 진정 분위기로 갔지만 이번 시위 사태는 다양한 파장을 남겼다.

우선 억눌린 민중의 정서가 ‘백지’라는 무언의 항의를 통해 표출되었다는 점이다. 중국에서 상례(喪禮)의 상징으로 애도와 추모를 대변하는 백지는 2019년 홍콩 보안법 사태 때 당국의 체포와 구금을 피하기 위해 시도된 바 있다. 백지는 ‘굳이 쓰지 않아도 다 알고 있는 내용에 대한 항의’의 풍자이며, 억압된 언론 자유에 대한 절망과 좌절의 표현이기도 하다. ‘프리드만 방정식(Friedmann Equations)’ 같은 난해한 수식으로 발음상 ‘자유인(freeman)’을 표현하는 한편 복잡한 우주 얘기를 꺼내 이번 상황의 복잡성을 우회적으로 제기하는 기지도 발휘했다.

둘째, 백지에 쓰지 못한 내용을 일단의 젊은이들이 과감하게 구호로 표현했다는 점이다. 분명히 시작은 무차별적 봉쇄식 코로나 방역과 이에 대한 민생의 피폐에 대한 호소였다. 백지는 난징전파매체 대학에서 처음 들었고, 상하이, 베이징, 광저우, 우한, 청두 등 중국의 10여 개 대도시로 동시 확산됐다. 상하이에서는 ‘시진핑 물러가라, 공산당 물러가라’는 구호를, 베이징대 칭화대 학생들은 민주·법치·언론 자유를, 청두에서는 ‘종신 황제를 원하지 않는다’는 시진핑 독재 반대 구호가 터져 나올 만큼 정치적 불만이 저변에 흐르고 있음을 드러냈다.

더욱 큰 문제는 백지 시위의 주축 세력이 가장 적극적으로 시진핑 체제에 힘을 실어주는 청년세대라는 점이다. 중국의 MZ세대로 불리는 이들은 기본적으로 중국식 민족주의, 즉 애국주의(愛國主義) 교육을 받고 자랐고, 시진핑식 사회주의를 홍보하는 인터넷 전사들이기도 하다. 청년세대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시진핑 체제가 추구하는 시진핑식 중국 사회주의 건설에 훈도되었고, 대학에 진학해서는 신시대 시진핑 사상을 학습했으며, 미중 갈등 국면에서 대미 결사 항전의 열렬한 지지 세대다. 그러나 이들도 제로 코로나 정책이 ‘인민 지상주의’보다는 ‘방역 지상주의’ 우선이 아니냐며 실망했고, 이제 시진핑 체제의 감시자로 돌아선 모양새다.

문제는 중국 당국이 작금의 현상과 그 숨은 뜻을 여하히 인식하느냐의 문제다. 중국 당국도 과도한 통제식 방역의 조정을 저울질하던 차였지만 지난 2년간의 방역 성공과 사회 안정에 기반한 정국 운영의 조바심으로 위드 코로나 전환에는 실패했다. 이제 중국 당국은 기본적으로 체제 순응적인 모습을 보여 왔던 민중들의 이번 항의가 코로나 방역을 빙자한 정치 안정과 사회통제를 위한 통제가 아니었냐는 질문임을 이해해야 한다.

이번 시위 행동은 시위 주도 조직이나 세력이 없고, 결정적으로 중국 당국의 공권력에 대항할 방법이 없다는 측면에서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시위가 잠잠해졌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은 결코 아니다. 대중들의 지속적인 정책 불신은 정부를 믿으려 하지 않는 ‘타키투스의 함정(Tacitus Trap)’이라는 정치적 신뢰 위기를 초래하게 된다. 자칫 중국공산당이 강조하는 ‘사회주의 가치관의 혼란’을 초래해 중국을 내재적 ‘사회 혼란’ 상태로 내몰 수도 있다. 중국 당국이 ‘믿음이 없으면 나라가 설 수 없다’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의 참뜻을 겸허히 되새겨야 할 때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HK+국가전략사업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