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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김현수]‘쿨’한 한국의 초저 출산율이 궁금한 세계

입력 | 2022-12-13 03:00:00

CNN “260조 비효율 韓의 저출산 대책”
한국만 더 낮은 이유, 교육에서 찾으라



김현수 뉴욕 특파원


얼마 전 언론인 대상 행사에서 한 프랑스 기자가 말을 걸어왔다. “월드컵에서 포르투갈을 상대로 넣은 마지막 골이 너무 멋졌다”며 황희찬 선수의 역전골을 몸짓으로 보여줬다. 옆에 있던 그리스 기자는 얼마 전 본 공연에서 한국계 배우의 연기를 극찬했다.

요즘 미국에선 이런 ‘국뽕의 순간’을 자주 느낀다. 완전한 주류는 아니더라도 미 대도시 젊은층에 한국은 ‘쿨’한 이미지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가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도 듣는다. ‘쿨’하고 경제적으로 풍족해 보이는 나라가 왜 아이를 낳지 않는지 궁금하다는 것이다. 분기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발표되면 미 주류 언론이 “이번에도 한국이 최저 기록을 경신했다”고 쓴다. 최근에도 CNN이 “16년 동안 260조 원을 써도 효과 없는 한국의 저출산 대책”을 지적해 화제를 모았다. 최근 발표된 한국 출산율은 0.79명이다. ‘원조’ 저출산 국가 일본(1.3명)보다 낮아진 지 오래다.

출산율은 미래에 대한 기대를 보여주는 지표다. 한국 출산율을 묻는 질문에 답하기 어려운 이유는 “한국이 겉보기에 ‘쿨’하고 풍족한 나라가 됐지만 정작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나 보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어서다. 외신은 구체적으로 부동산 가격 급등, 교육비 부담, 장기 근로 기업문화, 여성에게 집중된 육아 부담, 혼외 출산 비인정 등을 이유로 꼽는다.

이 중 경제 문제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지만 세계 공통의 문제이기도 하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장기간 저금리로 인한 자산 버블 랠리에 ‘초기 자본’이 없는 젊은층은 소외됐다. 미국도 2010년을 기점으로 합계출산율이 2.0명 밑으로 떨어지기 시작해 2020년 기준 1.6명으로 내려앉았다. 저성장, 경제 양극화, 중산층의 위기가 세계 젊은이들의 출산 파업을 유도하고 있다는 게 각국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국만 출산율이 더 떨어졌다는 것은 한국의 저성장 및 자산 버블이 더 심각했거나 다른 문제들이 있다는 의미다. 인구수나 경제 규모가 남다른 미국과 단순 비교하기 어렵지만 우리 사회는 미국에 비해 특히 ‘실패 후 다시 시작할 기회’에 박하다는 것을 느낀다.

서울 물가가 부담이면 다른 곳에서 다시 시작하면 좋겠지만 지방에서 괜찮은 일자리 찾기가 쉽지 않다. 노동시장은 너무 경직돼 있어 좋은 직장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급을 높여 이직하는 것이 어렵다. 계속 입사 시험을 보느라 다른 나라 젊은이들보다 사회생활 시작도 늦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에게 처음부터 ‘좋은 출발’을 만들어 주기 위해 애쓴다. 교육비가 세계 최고로 많이 든다. 연예인도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가 조기교육을 시켜야 하는 곳이 우리나라다. 미국에서 만난 학부모들은 이 점에 가장 놀란다. 자녀의 미래 적성을 예측해 조기교육을 시켜야 하는 정신적·경제적 부담감, 부모가 능력이 없어 자녀의 실패를 지켜봐야 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미국도 아이비리그에 보내려는 부모들의 열성과 비용은 어마어마하지만 꼭 그 길이 아니더라도 성공할 길이 많다는 믿음도 강하다. 우리는 기업문화나 교육문화나 모두 누군가의 ‘올인’이 필요해 회사에 남은 아빠도, 교육에 뛰어든 엄마도 지친다. 모두 떠맡은 워킹맘의 고통은 말해야 입 아프다.

이 악순환을 어디서부터 끊어야 할까. 최소한 공교육에만 의지해도 자녀에게 ‘좋은 출발’을 만들어 줄 수 있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 ‘쿨’한 한국이 ‘아이 낳기 좋은 나라’로도 비칠 날이 왔으면 좋겠다.




김현수 뉴욕 특파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