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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美대선, 주지사들의 전쟁[글로벌 이슈/하정민]

입력 | 2022-12-14 03:00:00

2024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집권 민주당과 야당 공화당의 대선 후보 물망에 오르내리는 론 드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 그레천 휘트머 미시간 주지사, 제이 프리츠커 일리노이 주지사(왼쪽부터). 사진 출처 각 주지사 트위터

하정민 국제부 차장


1977년부터 2009년까지 미국을 통치한 5명의 대통령 중 4명은 모두 백악관에 입성하기 전 가장 중요한 경력이 주지사였다. 지미 카터(조지아), 로널드 레이건(캘리포니아), 빌 클린턴(아칸소), 조지 W 부시(텍사스)가 다 그랬다. 이 기간 중 주지사 출신 최고 권력자가 아니었던 이는 하원의원, 유엔 주재 미국대사 등을 지낸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유일했다.

이후 등장한 3명의 대통령은 달랐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은 상원의원 경력을 앞세워 백악관 주인이 됐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정치 경험이 전무했다.

2024년 대선을 앞두고 미 정계에 주지사 출신 잠룡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달 중간선거에서 손쉽게 재선에 성공했고 현재 야당 공화당의 대선 후보군 중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론 드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대표적이다. 역시 3선에 성공한 그레그 애벗(텍사스·공화), 모두 재선한 개빈 뉴섬(캘리포니아·민주), 그레천 휘트머(미시간·민주), 제이 프리츠커(일리노이·민주) 주지사 등도 지천타천으로 하마평에 오르내린다.

취임도 안 한 유대계 조시 샤피로 주지사 당선인(펜실베이니아·민주)도 거론된다. 워싱턴포스트(WP), 폴리티코 등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치열하게 맞붙은 격전지 펜실베이니아에서 14%포인트 차로 낙승한 그가 최초의 유대계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주지사들이 각광받는 이유로 당파성이 짙은 워싱턴 중앙정치에 물들지 않았다는 신선한 이미지, 현직 대통령과 맞서는 강단 있는 모습 등이 꼽힌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를 맞아 각 주의 방역 정책과 이에 따른 찬반 논란에 이목이 쏠린 덕을 봤다는 평이 많다.

지난해 1월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는 강력한 거리 두기, 마스크 의무화, 백신 접종 정책을 폈다. 드샌티스 주지사는 “효과가 의문이고 개인의 자유 또한 중요하다”며 ‘맞짱’을 떴다. 일각에서 그의 이름과 ‘죽음(death)’을 합쳐 ‘데스샌티스’라 비판해도 주법으로 규제를 속속 해제했다. 보수 텃밭 텍사스를 이끄는 애벗 주지사 또한 비슷한 행보로 전국적 인지도를 얻었다.

반대 지점에 휘트머 주지사가 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 시절 강력한 셧다운 정책 및 백신 의무화를 주도했다. 불만을 가진 일부 극우세력이 그를 납치하려다 체포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 또한 지지층에게 “휘트머를 감옥에 가두라”고 선동했다. 이를 통해 지명도를 얻었고 이번 중간선거에서도 공화당 후보를 쉽게 눌렀다.

이들의 개인사도 흥미롭다. 호텔체인 하이엇 가문의 상속자인 프리츠커 주지사는 포브스 추정 36억 달러(약 4조6800억 원)를 보유한 억만장자다. 이번 선거와 4년 전에 쓴 돈의 대부분은 사재다. 재선 직후 자신을 ‘전사(戰士)’로 지칭했고 “트럼프 및 공화당과 싸우겠다”며 사실상 출마 선언을 했다. 누나 페니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상무장관을 지냈다.

뉴섬 주지사의 첫 부인은 유명 방송인 킴벌리 길포일이다. 언론은 매력적인 외모의 둘을 ‘새로운 케네디 부부’라고 했지만 5년도 못 가 헤어졌다. 길포일은 전남편과 정반대 정치 성향을 지닌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장남 트럼프 주니어와 연인이 됐고 2020년 약혼했다.

무엇보다 전대미문의 전염병 시대를 맞아 대규모 조직 관리, 예산 집행, 이해관계 조율 등을 해본 이들의 경험이 백악관 주인이 되기 위한 최고의 사전 학습으로 작용할 여지가 크다. 캘리포니아(3900만 명), 텍사스(2900만 명), 플로리다(2150만 명), 펜실베이니아와 일리노이(각 1300만 명), 미시간(1000만 명) 등 이들이 속한 주의 인구와 경제력 또한 어지간한 국가와 맞먹는다. 60대인 애벗 주지사를 제외하면 나머지 주지사 모두 4050의 ‘젊은 피’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과연 몇 명이 당내 경선과 본선 경쟁에서 살아남을지 알 수 없지만 이들의 행보만 지켜봐도 차기 미 대선의 향방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