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 축구의 전설 알 합시, 한국 축구를 평가하다
오만의 축구 전설로 불리는 알리 알 합시. A매치 128경기를 뛰며 국제축구연맹(FIFA) 센츄리 클럽에 가입한 알 합시는 2003년 한국과의 A매치에서 선방쇼를 펼치며 오만의 3-1 승리를 이끌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이를 ‘오만 쇼크’라고 부른다. 이후 아시아 골키퍼 최초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도 진출해 10여년 간 활약했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현대차의 ‘세기의 골 캠페인(Goal of the Century)’ 홍보대사 ‘팀 센츄리(Team Century)’ 일원으로 월드컵 현장을 오가고 있다. 사진은 EPL 위건에서 활동하던 시절. 알리 알 합시 트위터
오만 축구의 전설이자 아시아 출신 골키퍼 최초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활약했던 알리 알 합시(41)는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본 한국축구에 대해 “모든 경기를 직접 챙겨봤다”며 이렇게 총평했다. 덧붙여 “손흥민(30·토트넘)을 비롯해 황희찬(26·울버햄프턴), 김민재(26·나폴리) 등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선수들이 이번 월드컵에서 좋은 리더십과 활약을 보여줬다. 한국 축구의 미래가 밝은 것 같다”고 극찬했다.
알 합시는 현역시절 오만 대표팀에서 128경기의 A매치(국가대항전)를 뛰었고 EPL 볼턴, 위건, 레딩, 웨스트 브롬비치 등을 거치며 10여 년 동안 빅리그에서 활약했다. 위건 소속이던 2012~2013시즌에는 FA컵에서 우승하며 FA컵 우승을 경험한 최초의 아랍 출신 선수로도 이름을 올렸다.
지난달 16일 카타르 도하 알 비다 공원에 조성된 ‘피파 팬 패스티벌(FFF)’ 내에서 열린 ‘더 그레이티스트 골’ 공개 행사에 참석한 알리 알 합시(오른쪽). 위르겐 그리스벡 커먼골 대표, 덴마크 여자축구 대표팀의 나디아 나딤, 김언수 현대차 인도아중동대권역 부사장, 조형물을 제작한 이탈리아의 조각가 로렌초 퀸, 박지성(왼쪽부터) 등이 함께했다. 현대차 제공
‘축구인’으로서의 활동도 왕성하게 하고 있다. 알합시의 고향과도 같은 중동지역에서 개최한 첫 월드컵인 만큼 많은 경기를 직접 보며 해설 등을 하고 있다. 월드컵 개막 전 알 합시는 카타르 ‘걸프타임스’를 통해 “리오넬 메시(35)의 마지막 월드컵인 만큼 메시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 아르헨티나가 월드컵 우승을 차지할 것 같다”는 예측을 했는데, 14일 아르헨티나가 크로아티아를 3-0으로 꺾고 결승전에 선착하며 그의 예측은 점점 현실화 되고 있다.
알 합시는 “고향과도 같은 곳에서 세계적인 선수들이 치열하게 다투는 월드컵을 직관할 수 있어 하루하루가 행복하다. 특히 모로코를 비롯해 한국, 일본 등 아시아와 아랍 국가들이 선전해 같은 지역 국가대표 출신 선수로서 정말 뿌듯하다”고 했다. 덧붙여 “나의 조국인 오만이 함께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이번 월드컵이 오만의 유망주들에게 월드컵 본선, 유럽 진출 등을 꿈꾸게 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했다.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의 위업을 세운 한국은 이듬해 10월 치른 2차례의 아시안컵 2차 예선 방문경기에서 베트남에 0-1, 오만에 1-3으로 패했다.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02위 오만에게 선제골을 넣은 뒤 3골을 허용하며 역전패한 건 지금까지 ‘오만 쇼크’로 회자된다. 당시 오만 골키퍼로 ‘선방쇼’를 펼친 알 합시는 이를 계기로 2003년 말 FK 륀(노르웨이)에 입단하며 유럽에 진출했다. 그리고 3년 뒤 아시아 골키퍼 최초의 EPL 리거가 됐다.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에서 활약하던 2010년 전후에는 EPL에서 창과 방패의 대결을 펼쳤고, 볼턴 시절(2006~2010) 이청용(33·울산)과, 위건 시절(2010~2015년) 조원희(39·은퇴)와 한솥밥을 먹기도 했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전 주장 박지성(오른쪽)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셀카’를 찍고 있는 알 합시. 현대차 제공
2020년 8월 현역 은퇴를 선언하고 알 합시는 이번 카타르 월드컵을 통해 현대차와 손을 잡고 본격적인 은퇴 후 행보에 나섰다. 알 합시는 “2018년부터 오만에서 내 이름을 딴 ‘알 합시 축구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었다”며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앞으로 좀 더 수준 높은 유소년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해 오만의 젊은 선수들이 유럽에서 활동할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고 했다. 또한 앞으로 축구행정가로서의 활동을 왕성하게 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알 합시는 “지금까지 축구선수로 많은 팬들에게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을 받았다. 그동안 쌓은 명성을 활용해 축구행정가로 환경, 지속가능성과 관련된 메시지를 전파하고 다음 세대에게 축구나 그 밖의 영역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활동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