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스의 ‘The Beatles’는 백지 앨범의 전형이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임희윤 기자
최근 이른바 백지 시위, 백지 혁명이 중국 대륙을 뜨겁게 달궜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은 알았지만, 저마다 치켜든 새하얀 백지 한 장이 중국 정부의 ‘얼굴’을 백지장처럼 질리게 만드는 것을 이번에 봤다. 가벼운 백지의 무거운 힘을 느꼈다. 때론 한 글자의 말줄임표가, 1초의 침묵이 ‘벽돌책’이나 장광설보다 뜨겁게 웅변한다.
#1. 음악계에는 한자로 풀면 백지 아닌 백집(白集)쯤 되는 게 있다. ‘화이트 앨범’이다. 영국의 전설적 밴드 비틀스가 1968년 발표한 9집 앨범 ‘The Beatles’를 통칭한다. 앨범 표지가 새하얗기 때문. 완전한 공란은 아니고 자세히 보면 작은 글씨로 ‘The BEATLES’라 적혀 있다. 초면의 ‘비틀마니아(비틀스 마니아)’들이 안부 묻고 통성명한 뒤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이 대개 “비틀스의 앨범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인데 대표적 대답 중 하나가 이 음반이다. 비틀스 최고의 명작으로는 순회공연 활동을 중단하고 스튜디오 작업에 매진한 1966년 이후의 후기 작품들이 보통 꼽히는데 ‘Revolver’(1966년),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1967년), 화이트 앨범, ‘Abbey Road’(1969년)가 그것이다.
#2. 1960년대 영국 음악계가 ‘백집(白集)’을 낳았다면 1990년대 미국 음악계는 ‘흑집(黑集)’으로 화답했다. 헤비메탈 밴드 메탈리카가 1991년 내놓은 5집 앨범 ‘Metallica’, 일명 블랙 앨범이다. 커버는 마치 두꺼운 성서의 겉장처럼 새까만데 자세히 보면 보일 듯 말 듯한 회색 선으로 ‘METALLICA’라는 글씨와 똬리 튼 뱀 그림이 새겨져 있다. 화이트 앨범만큼이나 ‘과묵한’ 커버다. 흥미롭게도 메탈리카 팬들의 ‘최고 명반’ 설전은 비틀스와 반대로 밴드의 초기 앨범들이 소재다. 1983년 데뷔작 ‘Kill ’Em All’부터 ‘Ride the Lightning’(1984년), ‘Master of Puppets’(1986년), ‘…And Justice for All’(1988년) 그리고 블랙 앨범이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데뷔 앨범(왼쪽 사진)은 바나나 껍질을 벗기면 과육이 보이게끔(오른쪽 사진) 제작됐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5. 백지 시위는 일단 중국 정부의 일보 후퇴로 멈췄다. 그러나 정부가 민의를 또 한번 거스른다면? 어쩌면 성난 군중은 ‘껍질’을 벗고 거리로 돌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검은 옷을 입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