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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박지원 불러 조사… 구속영장도 검토

입력 | 2022-12-15 03:00:00

서해피살 첩보일체 삭제 지시 혐의
朴 “지시 받거나 지시한 적 없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사진)을 14일 불러 조사했다. 노무현 정부 김만복 전 원장부터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재임한 국정원장이 8명째 연달아 검찰 조사를 받은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검사 이희동)는 이날 오전 10시 박 전 원장을 불러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 씨(사망 당시 47세) 피살 다음 날 청와대에서 열린 1차 관계장관회의 논의 내용과 첩보 자료 삭제 지시 여부 등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원장은 이 씨 피살 관련 첩보 보고서 삭제를 지시한 혐의로 올 7월 국정원으로부터 고발됐다.

박 전 원장은 검찰에 공개 출석하면서 기자들과 만나 “문 전 대통령이나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수감 중)으로부터 어떤 삭제 지시도 받지 않았고, 국정원 직원들에게 삭제를 지시하지도 않았다”고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출석하면서 취재진들에게 손들어 인사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그러나 검찰은 박 전 원장이 이 씨 피살 다음 날인 2020년 9월 23일 오전 1시 청와대에서 열린 1차 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해 서 전 실장으로부터 ‘보안을 유지하라’는 지시를 받은 뒤 첩보 보고서 46건 등 “관련 자료 일체를 삭제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검찰은 박 전 원장에 대해 구속영장 청구도 검토 중이다. 전날(13일) 조사를 받은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보안 유지 및 첩보 삭제 지시에는 관여하지 않아 검찰이 영장을 청구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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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1차 관계장관회의에서 서 전 실장의 지시를 받은 박 전 원장이 노은채 전 국정원장 비서실장에게 “국정원 내 통신첩보 관련 자료 일체를 삭제하라”고 지시한 정황을 파악한 것으로 확인됐다.
○ “첩보 자료 일체 삭제” 지시 정황

14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국정원은 이 씨가 피살된 2020년 9월 22일 오후 4시경부터 이 씨가 북한에 표류 중이라는 첩보를 수집한 상태였다. 국정원 내 북한 첩보 담당자는 군 대북 감청정보(SI·특수정보) 등을 토대로 이 씨가 북한 측의 질문에 “목포 출신의 이대준이다”라고 답변했다는 내용 등을 정리해 박 전 원장에게 보고한 후 오후 5시 58분경 내부 시스템에 보고서를 등록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씨는 같은 날 오후 9시 41분경 북한군에 의해 사살됐고 이후 시신이 소각됐다. 군은 오후 10시 44분경 피살 첩보를 입수해 내부망에 올렸고, 국정원도 비슷한 시간에 이를 파악해 통합시스템에 첩보를 등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오후 11시 20분 북한 첩보 담당자가 박 전 원장에게 보고했고, 박 전 원장은 상황을 서 전 실장과 공유했다고 한다.

다음 날 오전 1시 청와대에서 1차 관계장관회의가 열렸고 이 자리에서 ‘보안 유지’ 지시를 받은 박 전 원장은 오전 3시 노은채 전 비서실장을 통해 국정원 내부에 자료 삭제를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박 전 원장은 “표류 국민 사살 관련 내용은 중대하고 민감한 사안이니 외부에 알려지지 않게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하되, 국정원 내 통신첩보 관련 자료 일체를 삭제하도록 할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이 지시에 따라 이날 오전 11시 37분까지 국정원 첩보보고서 46건 등 관련 자료 일체가 삭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첩보 및 관련 보고서를 열람한 국정원 관계자들에게 피살 및 소각 사실에 대한 철저한 보안교육도 이뤄졌다고 한다.

검찰은 첩보 삭제 지시가 박 전 원장과 국정원 직원을 통해 ‘투 트랙’으로 내려간 정황도 파악했다. 서 전 실장으로부터 은폐 지시를 받은 대통령안보전략비서관 A 씨가 행정관을 통해 국정원 담당자에게 “안보실 결정사항이다. 서해에서 국민이 사살되고 소각된 사건은 대외 보안으로 절대 비밀이니 보안에 유의하라”, “외부에 이 얘기가 나가면 절대 안 된다”라고 전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A 씨와 국정원 관계자들을 조사해 관련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검찰 조사에서 사안이 엄중하니 보안 지시를 했을 수 있으나 구체적으로는 기억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 박 전 원장, 검찰 조사에서 혐의 부인

檢 출석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에 연루된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14일 오전 10시경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며 취재진에게 입장을 밝히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하지만 박 전 원장은 이날 검찰 조사에서도 “국정원 직원들에게 삭제를 지시한 적 없다”며 혐의를 재차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간에 지시를 전달받은 것으로 지목된 노은채 전 비서실장 측도 “박 전 원장으로부터 보안 지시를 받은 사실은 있으나 삭제 지시는 받은 바 없다고 검찰에 진술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따라 A 씨를 통해 내려간 지침이 박 전 원장의 지시로 와전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당시 박 전 원장은 취임 후 두 달이 채 안 된 상태였고 전임 원장이었던 서 전 실장이 여전히 국정원 내부에서 큰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반면 검찰은 박 전 원장의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검찰은 1차 관계장관회의에서 지시를 받고 첩보를 삭제한 혐의로 서욱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만큼 박 전 원장에 대해서도 구속영장 청구를 검토하고 있다. 검찰은 박 전 원장 신병처리가 끝나는 대로 첩보 삭제 지시 혐의(직권남용 등)와 관련해 서 전 실장을 추가 기소하고 서 전 장관 등을 재판에 넘길 것으로 알려졌다.




장은지 기자 jej@donga.com
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