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시스 윌리엄 에드먼즈 ‘새보닛’, 1858년.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는데도 독학해서 화가로 성공한 이들이 있다. 프랑스에 앙리 루소가 있다면 미국에는 프랜시스 윌리엄 에드먼즈가 있다. 세관원이었던 루소는 은퇴 후 전업 화가가 되었지만 에드먼즈는 평생 은행원이었다. 돈을 다루는 직업인이다 보니 그림을 그릴 때는 오히려 문학이나 도덕적 주제에 빠져들었다.
17세기 네덜란드 풍속화를 연상케 하는 이 그림은 19세기 미국 중산층 가정을 묘사하고 있다. 가운데 젊은 여성은 새 보닛을 손에 들고 만족한 표정을 짓고 있다. 오른쪽에 있는 그녀의 부모는 보닛 가격표에 놀라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문 앞에 서 있는 배달부 소녀가 딴 세상 사람들을 보듯 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저 보닛 하나 가격이 가난한 소녀 가족의 몇 달 치 식비에 해당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소녀에겐 바닥에 놓인 각종 채소들이 더 탐나는 품목일 테다. 허영에 빠진 여자와 노동에 내몰린 어린 소녀의 모습이 강한 대조를 이룬다.
에드먼즈 역시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다. 판화가가 되고 싶었으나 집안 형편 때문에 일찌감치 은행원이 되었다. 그렇다고 꿈을 포기하진 않았다. 평생 은행원으로 일하면서도 꾸준히 그림을 그렸다. 30세 때 처음으로 전시에 참가했지만 확신이 없어 필명으로 출품했다. 걱정과 달리 호평을 얻자 그제야 자신감을 갖고 화가로 활동했다. 그가 52세 때 그린 이 그림은 물질만능주의와 소비주의를 풍자하고 있다. 은행원으로 일하면서 만난 수많은 고객들이 이 그림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허영심 많은 부자부터 방탕으로 재산을 탕진한 이, 가난을 대물림하는 사람들까지.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