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대표가 15일 국회 의장실에서 열린 국회의장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김진표 의장,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사진공동취재단
내년도 예산안의 법정 처리 시한을 이미 넘긴 여야가 자체적으로 정한 ‘2차 데드라인’ 조차 결국 빈손으로 흘려보냈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법인세 인하 및 행정안전부 경찰국,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예산안과 관련한 중재안을 냈지만 여야는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김 의장의 중재안을 수용하겠다고 밝혔고, 국민의힘이 추가 협상을 시사하면서 연말 예산 정국은 당분간 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 野 “전격 수용”에 與 “추가 협상”
김 의장이 “마지막”이라고 강조한 중재안에 담긴 법인세 인하와 경찰국·인사정보관리단 예산 문제는 여야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해온 쟁점이다. 민주당이 ‘초부자감세’라고 반발해온 법인세 인하는 감세 폭을 3%포인트에서 1%포인트로 낮추고, 윤석열 정부가 대통령령으로 설치했지만 민주당이 위헌이라며 반대해온 경찰국·인사정보관리단 예산은 삭감하되 해당 액수만큼 예비비를 편성하는 것이 중재안의 핵심이다. 김 의장은 “두 기관(경찰국, 인사정보관리단) 예산을 합쳐도 5억 원밖에 되지 않는다”며 “전체 639조 원 예산안 중 5억 원에 대한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 해 (민주당이) 예산안을 단독 처리한다면 명분 싸움에 쌓여 소탐대실하는 전형적 나쁜 사례”라며 여야 합의를 재차 강조했다.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이날 오후 3시20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전격 수용을 선언하며 여당의 결단을 촉구했다. 이 대표는 “의장 중재안이 우리의 정치적 판단과는 다르더라도 대승적 차원에서 상인적인 현실감각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공을 넘겨받은 국민의힘은 이날 오후 5시 45분경 의원총회를 열고 의장 중재안에 다른 쟁점들까지 한 데 묶어 일괄 합의를 타진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의원총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나머지 의견 정리가 안 된 항목들을 여야간 합의해서 의견이 좁혀질 때 (중재안) 수용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의장 중재안에 담긴 두 항목 뿐만 아니라 기초연금, 공공임대주택 등 다른 쟁점들까지 모두 최종 협상을 벌이겠다는 의도다.
● 법인세 1%P 인하에 대통령실도 ‘못마땅’
민주당이 중재안을 전격 수용한 건 헌정 사상 초유의 ‘야당 예산안 단독 처리’에 대한 부담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가 이날 초선의원들과 가진 오찬 자리에도 “야당이 예산안을 내는 것 자체가 위헌 소지가 있다” 등의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여기에 예산안 협의 불발의 책임을 집권 여당에 넘기겠다는 의도도 깔렸다는 분석이다. 이날 여야 협상이 결렬되면서 윤석열 정부의 첫 예산안 처리까지는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주 원내대표는 이날 의총에서 “쟁점 조율에 2, 3일 정도 걸릴 것”이라고 했다. 감액 규모 등에 대해서도 이견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다만 민주당의 단독 예산안 처리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이 변수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 대표가 직접 나서 중재안 수용이라는 결단을 내렸지만 집권 여당이 거부한 것”이라며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자체적인 단독 수정안을 고려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