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서경대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교수
지난달 학교 연구소에서 주한 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 주조 가즈오(中條一夫) 원장님을 모시고 일본 전통 술과 한일의 음주 문화에 대한 강연회를 열었다. 행사를 마치고 회식 자리에 원장님이 두 병의 술을 가지고 오셨는데, 일본의 사케와 한국의 막걸리였다. 그중 막걸리는 ‘A막걸리 18도’였는데, 마셔 보고 그 맛에 깜짝 놀랐다. 조금 걸쭉하지만 생크림처럼 부드러웠고, 곡식의 깊은 맛이 느껴졌다. 입안에 은은한 단맛이 돌아 어릴 적 먹어본 ‘조선 엿’이 생각났다. 알고 보니, 특히 18도짜리는 막걸리 중에서도 고가의 고급 막걸리로 발효나 숙성 기간이 길어 명절이나 연말 등 특수 시즌에만 구할 수 있는 특별한 것이었다.
이 막걸리를 준비한 원장님은 외교관이면서 일본 전통주 사케 소믈리에 자격을 가진 술 전문가로, 그날 식사 자리를 위해 전남 해남의 양조장에 연락해 직접 구해 오셨다. 그는 서민적 한국 막걸리가 최근 양질의 국산 재료와 자연 숙성으로 고급화된 예로 이 막걸리를 소개해 주었다. 이날은 한국의 막걸리 한 병과 일본의 사케 한 병으로 한국과 일본의 문화 이야기를 꽃피웠다.
연말연시를 맞아 회식 자리가 많아졌다. 12월 들어 나도 학회의 뒤풀이도 가보고 오랜만에 지인들도 직접 만났다. 회식 자리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또 술이다. 식사를 하며 술을 곁들이면 긴장도 풀리고 사람들과 더 친밀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일본과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해오면서 나는 실은 술자리가 좋지만은 않았다. 일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1980년대 초반, 여성 신입사원으로 회식 자리는 상사에게 술을 따라 드리느라 편안히 앉을 수 없었고, 상사의 눈치를 보느라 무척 신경 썼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선배 교수님들에게 술을 강요당해 울면서 마셨던 기억도 난다. 그래서일까? 나는 언제부터인지 술자리가 부담스러워졌다.
처음 한국에 와서 놀랐던 것은 한국 사람들이 술이 너무 세다는 거다. 일본에서는 위스키나 소주 같은 도수가 높은 술은 물을 타거나 얼음을 넣어 희석해 마시는데, 한국 사람들은 그대로 마시거나 심지어 술끼리 섞어 마신다. 또 일본은 ‘건배’를 처음에 한 번만 하지만 한국은 연달아 ‘건배’를 외치며 술을 마셨다. 또 일본에서는 손윗사람의 잔이 어느 정도 비면 다 마시지 않아도 채우는 ‘첨잔’ 문화가 있는데 이것도 한국과 조금 다르다.
대학생들도 개인 차이가 있으나 일본에서는 사와(サワ―·과즙이나 소다수 등에 술을 섞은 음료)나 ‘주하이(チュ―ハイ)’ 등 도수가 약한 알코올음료를 마시는데 한국에서는 소주를 주로 마셨던 것 같고 술맛을 음미하기보다 취하기 위해 마시는 것처럼 느껴졌다.
요즘 음주문화는 MZ세대들이 성인이 되면서, 그리고 코로나를 거치면서 크게 변했다. 경기 악화의 영향도 있다. 일본의 요즘 음주문화에 대해 일본에 거주하는 지인 3명에게 물어봤다. 공통점은 젊은이들이 직장보다 개인 생활을 중요시해서인지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부터 직장 회식을 선호하지 않았고, 코로나 이후 아직까지 대규모 행사가 거의 없기도 하지만 송년회를 하더라도 마음에 맞는 사람끼리 소규모로 간다고 한다. 그러면서 집에서 마시는 ‘혼술(家飮み)’이 정착했고 온라인을 통한 술자리는 계속 이어진다고 한다. 일본생명보험상호회사의 통계에 따르면 일본에서 ‘노미니케이션’이 필요하다고 하는 사람의 비율은 2019년 57.3%, 2020년 54.3%였던 것이 2021년에는 38.2%로 절반에 못 미쳐 확실히 인식이 변화해 간다. 또한 미투 운동의 영향으로 술자리에서 남녀평등이 이뤄졌다 한다.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서경대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