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희 고려대 구로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는 저탄수화물 고지방(저탄고지) 다이어트로 5개월 사이에 21kg을 빼는 데 성공했다. 밥 없이 고기와 채소로만 꾸려진 식탁에서 강 교수가 식사를 하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2000년대 중반 이른바 ‘황제 다이어트’가 국내에서 크게 유행했다. 밥이나 빵과 같은 탄수화물 음식을 안 먹는다면 고기나 햄, 버터 등 고지방·고단백질 음식만 먹어도 체중이 빠진다는 얘기였다. 고기를 양껏 먹는데도 살이 빠지니 황제 식사나 다름없다며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이것이 저탄고지(저탄수화물, 고지방) 다이어트의 원조다. 이 다이어트를 창시한 미국 의사 로버트 앳킨스는 2003년 건강이 악화돼 사망했다. 이후에는 변형된 저탄고지 다이어트가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요즘에는 탄수화물을 전체 식단의 5% 이내로 제한하고 나머지 95%를 지방과 단백질로 채운다.
저탄고지 다이어트의 부작용도 적지 않다. 당장은 괜찮아도 장기적으로 콩팥을 망치거나 심혈관계 질환을 초래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 때문에 의학계에서도 안전성과 효능 여부를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 비만과 고혈압 잡으려 저탄고지 시작
강상희 교수는 식이요법 외에 운동을 병행할 것을 권했다. 강 교수가 병원 근처 공원에서 걷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혈압도 치솟았다. 검사 결과 수축기와 이완기 혈압이 각각 160㎜Hg와 100㎜Hg로 나타났다. 고혈압 기준은 각각 120㎜Hg, 80㎜Hg 이상이다. 이미 고혈압 환자였던 셈이다. 고혈압 약을 먹기 시작했다. 심장 박동수도 빨라졌다. 보통 성인의 정상 심박수는 60~100회. 강 교수의 경우 100회에 육박했다. 가까스로 정상 범위를 지켰지만 더 빨라지면 심혈관계 질환 위험이 있다.
이대로 두면 큰일 나겠다 싶었다. 마침 수술을 집도할 때 봤던 비만 환자의 배 속 상태가 떠올랐다. 장기에 들러붙어 있는 지방은 염증을 유발한다. 암 수술을 하려면 지방부터 제거해야 한다. 강 교수는 비만이 만병의 근원이란 점을 새삼 깨달았다.
이런 여러 이유가 겹치면서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강 교수는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잘 맞는 다이어트 방법을 찾기 위해 의학 논문을 뒤졌다. 그러다 저탄고지 다이어트에 꽂혔다.
이 다이어트가 논란이 많고, 어떤 의사들은 절대 하지 말라고 경고한다는 점까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여러 자료를 추가 확인한 후 ‘의학적으로’ 타당한 다이어트라고 판단했다. 체중이 최고점을 찍고 한 달이 지난 뒤 강 교수는 저탄고지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 “5개월 사이에 21kg 감량 성공”
강상희 고려대 구로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는 저탄수화물 고지방(저탄고지) 다이어트로 5개월 사이에 21kg을 빼는 데 성공했다. 밥 없이 고기와 채소로만 꾸려진 식탁에서 강 교수가 식사를 하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탄수화물 섭취량을 줄인 덕에 효과가 당장 나타났다. 일주일 만에 5kg이 줄었다. 그 후로도 한동안은 체중 감량 속도가 놀랄 정도로 빨랐다. 하지만 부작용도 생겼다.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빠졌고, 코피가 나기도 했다. 만성 피로감도 느껴졌다. 강 교수는 “대체로 저탄고지 다이어트의 초기에 나타나는 부작용”이라고 설명했다.
부작용은 한 달 동안 지속됐다. 하지만 포기할 마음은 없었다. 운동을 시작했다.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3개월 만이었다. 퇴근 후 오후 10시 무렵 야외로 나가 걸었다. 처음에는 30분 정도를 느린 속도로 걸었다. 점차 걷는 시간과 속도를 늘렸다. 어떤 날에는 달리기도 했다. 이 습관이 자리 잡으면서 나중에는 평균적으로 주 3회 1시간 이상 운동을 했다.
이후 부작용도 사라지고 몸도 가뿐해졌다. 체중 감량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5개월 사이에 21kg이 빠졌다. 그 전까지 입었던 옷이 헐렁해졌다.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얼굴과 몸매가 날렵해졌다. 목표한 체중까지 빠졌으니 다이어트 성공. 이게 끝일까.
● “다이어트 변형하며 효과 유지”
강상희 교수는 식이요법 외에 운동을 병행할 것을 권했다. 강 교수가 병원 근처 공원에서 걷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일단 저녁 식사 위주로 넉넉히 먹는 습관은 고수했다. 다만 세부적으로는 약간의 변화를 줬다. 음식 섭취량을 더 줄였다. 소식(小食)으로 바꾼 것이다. 저녁에 먹는 고기의 양을 2인분에서 1인분으로 줄였다. 대신 채소는 더 먹었다. 점심을 소시지에서 야채샐러드로 바꾼 것도 달라진 점이다.
이와 함께 늦은 시간대에는 음식을 먹지 않았다. 다음 날 낮이 돼서야 첫 식사를 했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간헐적 단식이다. 강 교수는 “다이어트 효과가 나타나면 다양한 방법을 자신에게 맞도록 변형하는 게 장기 성공률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했다.
강 교수가 신경 쓰는 대목이 하나 더 있다. 운동이다. 강 교수는 “아무리 좋은 다이어트라고 해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몸만 더 힘들 수 있다”며 “반드시 운동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이어트 철학이 필요하다
지난해 12월 이후 올 4월까지 강상희 교수의 체중이 일시적으로 7kg 늘었다. 입덧하는 아내와 음식을 같이 먹느라 다이어트를 잠시 중단했기 때문이다. 올 6월 아기를 출산한 후 다이어트를 재개해 7kg을 뺐다. 강 교수는 “다이어트 철학만 확고히 해 놓으면 이런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첫째, 다이어트는 단순히 체중을 빼는 게 아니라 삶을 바꾸는 수단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 강 교수의 경우 찔끔찔끔 체중을 줄이기보다는 초기 효과가 큰 방법을 택했다. 일단 다이어트를 시작하면 과감하게 밀어붙여야 한다. 누군가 “이런 게 좋은 다이어트다”라는 식으로 말해도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둘째, 소식(小食)을 해야 한다. 넉넉히 먹으면서 살이 빠지는 방법은 없다는 점을 잊지 않는다. 강 교수는 “다이어트에 좋은 음식을 추천해 달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음식은 없다”고 말했다.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덜 먹고, 얼마나 적게 먹느냐에 성공 여부가 달렸다는 뜻이다.
셋째, 다이어트를 지속하려면 운동을 병행해야 한다. 식사량을 줄이면 우울해지거나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을 수 있다. 이때 운동으로 이런 부작용을 해소할 수 있다. 다만 운동을 다이어트의 일환으로 생각하면 또 다른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즐기는 마음이 필요하다.
넷째, 그는 “다이어트는 뇌와의 싸움”이라고 했다. 음식을 줄이는 대신 뭔가 뇌를 자극해 보상 심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하라는 얘기다. 가령 가끔은 비싸더라도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거나 식비를 줄인 돈으로 여행을 가는 식이다. 보상 심리가 충족되면 그만큼 다이어트를 지속할 동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