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골한 청년들/김미영 등 지음/372쪽·1만8500원·오월의봄
여정(가명·32) 씨는 “아픈 몸으로도 일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17세 때 소화기관 여러 부위에서 만성염증을 일으키는 크론병 진단을 받은 그는 평생 이 질병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대장과 소장 일부를 절제해 몸무게가 32kg까지 빠지기도 했다. 결국 고등학교를 자퇴했지만 꿈을 포기하진 않았다. 26세 때 다시 공부를 시작해 어렵사리 간호사의 꿈을 이뤘다.
하지만 또 다른 고통이 일터에서 찾아왔다. 수시로 복통이 왔지만 ‘민폐’가 될까 봐 아프다는 말도 꺼낼 수 없었다. 병원 진료를 받으려고 연차를 쓸 때마다 동료들의 눈치를 봐야 했다. 결국 여정 씨는 꿈을 이룬 지 6개월 만에 퇴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골골한 청년들’은 비영리법인 연구기관인 사회건강연구소가 허리디스크와 식도염, 소뇌염 등 여정 씨처럼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청년 7명의 인터뷰를 엮은 책이다. 스스로를 “부도난 수표”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 부르며 자책하는 이들의 삶에는 만성질환자를 배척해 온 사회의 민낯이 담겨 있다.
이 청년들에게 이는 너무나 가혹한 말이었다. 만성질환자 홍이(가명) 씨는 “아픈 사람은 회복돼야만 일할 수 있는 것이냐”고 되묻는다. 어쩌면 선의로 했을 수도 있는 말이, 누군가에겐 차별이 될 수 있단 얘기다. 만성질환자는 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게 불가능한 일일까. 유럽에선 2000년대 초반부터 만성질환자 실태를 조사하고, 이들이 일터에서 차별받지 않는 ‘환자 친화적 일터’를 마련해 왔다. 회사는 만성질환자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교육도 시행한다. 더 나아가 이들이 원할 때는 아프더라도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려 애쓴다.
이 책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만성질환자는 어디에나 있고 누구나 만성질환자가 될 수 있다.” 2016년 ‘유럽 삶의 질 조사’에 따르면 유럽인의 약 28%가 만성적이고 장기적인 질환을 앓고 있다. 우리 역시 소수의 일로 치부할 게 아니라 우리의 문제로 이 사안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