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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혈 강경 진압에도 꺼지지 않는 이란 ‘히잡 반대 시위’

입력 | 2022-12-17 10:15:00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 의문사 계기로 전국 확산, 어린이 64명 등 475명 사망




이란 여성들이 의문사한 마흐사 아미니의 사진을 들고 히잡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트위터]

이란에는 여성 옷차림을 단속하는 ‘도덕 경찰’이 있다. 페르시아어로 ‘가시테 에르셔드’(Gasht-e Ershad: 지도 순찰대)로 불리는 도덕 경찰은 이란 여성 인권 탄압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9세 이상 모든 여성의 히잡(이슬람 여성이 머리와 목 등을 가리기 위해 쓰는 두건의 일종) 착용을 의무화했다. 그리고 1983년 4월 히잡 착용을 의무화하는 법을 제정했다. 히잡 의무 착용 규정을 둔 국가는 전 세계 57개 이슬람권 국가 중 이란뿐이다. 특히 이란은 해외에 나간 여성과 외국인 방문객에게까지 히잡 착용을 강제한다.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쓰지 않으면 2개월 이하 징역 또는 벌금에 처한다.

이란이 여성 복장을 엄격히 제약하는 이유는 이슬람 경전 ‘꾸란’의 충실한 이행을 목표로 삼고 있는,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신정(神政·Theocracy)체제 국가이기 때문이다. 꾸란 24장 31절엔 “여성은 아름다운 곳을 드러내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구절이 있다. 신정체제는 종교지도자가 국가를 통치하는 정치제도를 말한다. 이란 최고 종교지도자였던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1902~1989)는 이슬람 혁명을 통해 팔레비 왕조를 붕괴시킨 후 신정체제 국가를 세우고 이슬람 율법(샤리아)을 통치 근간으로 삼았다. 특히 호메이니는 자신이 주도한 이슬람 혁명과 신정체제를 수호하고자 혁명수비대를 만들었다. 혁명수비대는 육해공군과 정보 및 특수부대, 미사일부대 등을 보유한 정예 군 조직이다.

호메이니를 절대적으로 신봉해온 혁명수비대 출신이자 이슬람 강경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전 이란 대통령은 2006년 도덕 경찰을 만들었다. 도덕 경찰은 그동안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을 비롯해 꽉 끼는 바지나 찢어진 청바지, 무릎이 드러나는 옷, 밝은 색 옷 등을 착용한 여성을 단속해왔다. 특히 지난해 8월 취임한 이슬람 강경파이자 성직자 출신인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은 여성이 히잡을 착용하지 않을 경우 관공서, 은행,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게 했고 폐쇄회로(CC)TV와 안면 인식 프로그램을 통해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은 여성을 단속하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이란 도덕 경찰이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은 여성을 단속하고 있다. [Fars]


이란에서 히잡 반대 시위가 4개월째 이어지는 데는 마흐사 아미니(22)라는 여성이 9월 16일 히잡을 느슨하게 썼다는 이유로 도덕 경찰에 체포됐다 숨진 사건이 발단이 됐다. 가족과 함께 수도 테헤란을 여행 중이던 아미니는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다 의식이 없는 상태로 병원에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다.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는 “도덕 경찰이 아미니에 고문과 학대를 가했을 개연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여성의 의문사를 계기로 이란 전역에서 히잡 반대 시위가 벌어지면서 반정부 시위로 비화되고 있다. 시위에 참여한 많은 여성은 히잡을 벗어 불태우고 머리카락을 자르는 등 이란 정부의 강경 진압에 맞서고 있다.

사회를 엄격하게 통제하는 이란에서 반정부 시위가 이처럼 길게 지속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특히 젊은 여성들이 반정부 시위의 주축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 이번 시위는 주로 10대와 20대 여성이 주도하고 있다. 그동안 이란 내 반정부 시위는 모두 실패로 끝났다. 이란 정부는 2009년 대통령 부정선거 항의 시위, 2017년 경제정책 실패 항의 시위, 2019년 휘발유 가격 폭등 항의 시위 등이 발생했을 때 군경을 투입해 유혈 진압했다. 이란 정부는 이번에도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있다. 인권단체 등에 따르면 9월 16일 이후 지금까지 반정부 시위에 참가했다 강경 진압으로 사망한 사람이 어린이 64명을 포함해 475명에 달하며, 1만8000여 명이 체포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많은 이란 국민이 이번 시위에 동참하고 있다. 심지어 배우와 감독, 가수, 시인, 프로축구 선수를 비롯한 스포츠 스타 등이 이번 시위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카타르월드컵에 출전한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은 경기 직전 국가가 흘러나올 때 국가를 따라 부르지 않는 방식으로 반정부 시위 지지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반정부 시위대는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이 미국에 패해 16강 진출이 좌절되자 환호하기도 했다. 축구 국가대표팀의 승리가 이슬람 정권에 힘을 실어줄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이란 군경은 축구 국가대표팀의 패배를 기뻐하던 반정부 시위대에 총탄을 퍼부어 27세 남성이 사망하기도 했다.

시위대 무자비하게 유혈 진압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호세인 하메네이(오른쪽)와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이 나란히 앉아 있다. [IRNA]


이란 군경은 물론, 혁명수비대 산하 기관인 바시지 민병대는 반정부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유혈 진압하고 있다. 이란 군경이 고의로 반정부 시위에 참가한 여성들의 얼굴과 가슴, 성기를 노려 산탄총을 발사하고 있다는 의료진의 증언까지 나왔다. 이란 군경의 이런 행위는 시위대에 겁을 줘 시위를 무력화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란 혁명 법원은 12월 8일 반정부 시위에 참여해 군경에 흉기를 휘두르려 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은 모센 셰카리(23)를 처형했다. 혁명 법원은 셰카리가 이슬람 율법을 어겼다며 ‘모하레베’(신에 대항한 전쟁) 혐의를 적용했으며, 변호인의 도움도 받지 못하게 했다. 또 혁명 법원은 12월 12일 반정부 시위에 참가해 군경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은 마지드레자 라흐나바드(23)를 공개 처형했다. 라흐나바드에 대한 사형은 이슬람 시아파 성지로 불리는 마슈하드 도심에서 집행됐다. 반정부 시위 관련자 가운데 최소 24명이 사형 선고를 받았는데, 이들도 형이 집행될 예정이다.

반정부 시위대는 혁명 법원의 가혹한 형벌과 군경의 무차별 진압에도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반정부 시위대의 동참 호소에 따라 수도 테헤란을 비롯해 이스파한 등 주요 도시에서 많은 기업, 의료기관, 상점, 시장이 문을 닫고 파업을 벌였다. 현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호세인 하메네이의 여동생인 바드리 호세이니 하메네이도 오빠를 ‘독재자’라고 부르며 강력하게 비난했다. 바드리는 “국민은 자유와 번영을 누릴 자격이 있으며 그들의 봉기는 합법적이고 그들의 권리를 성취하기 위해 필요하다”면서 “나는 국민의 승리와 이 폭정의 전복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바드리의 딸 파리데흐 모라드카니는 인권운동가로 활동하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정권을 비판하는 내용의 영상을 올렸다가 11월 23일 체포돼 교도소에 투옥됐다. 모하마드 하타미 전 대통령도 반정부 시위대를 적극 지지하고 라이시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1997년부터 2005년까지 재임한 하타미 전 대통령은 언론 자유와 여성 권리 증진을 지지해온 개혁파 정치인이다.

이란 정부 일각에선 반정부 시위를 중단시키기 위해 도덕 경찰을 폐지하고 히잡 착용을 의무화하는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모하마드 자파르 몬타제리 법무장관은 “앞으로 도덕 경찰을 폐지할 것”이라면서 “의회와 사법부가 히잡 착용 의무화법 개정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란 정부는 도덕 경찰의 활동 중단이나 조직 폐지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았다. 실제로 이란 국영TV는 이를 전면 부인했다. 몬타제리 장관의 발언은 반정부 시위대의 열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꼼수’였던 것이다. 특히 강경파가 득세하는 의회와 사법부가 히잡 착용 의무화법 개정에 반대하고 있다.


성직자와 혁명수비대 출신자, 국가 요직 장악
이란의 모든 권력기관을 장악한 강경파는 히잡 반대 시위에 굴복할 경우 신정체제가 무너질 것을 우려한다. 만약 의회가 히잡 착용 의무화법을 개정하더라도 현실화하려면 신정체제의 핵심이자 최고 헌법기관인 혁명수호위원회가 이를 승인해야 한다. 12명으로 구성된 혁명수호위원회는 헌법 제98조에 따라 모든 헌법 조항을 해석한다. 이를 바탕으로 위원회는 의회를 통과한 모든 법안에 대한 인준 및 거부권을 가진다. 현재 이란의 주요 요직은 성직자와 혁명수비대 출신 간부가 대거 장악하고 있다. 이들은 장관과 의원은 물론, 각 지방의 주지사 자리를 대부분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주요 국영 기업을 비롯해 석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 기업 최고경영자와 간부도 이들과 관련된 인사들이다. 이란 신정체제는 이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절대 수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메네이는 83세 고령임에도 히잡 반대 시위대의 퇴진 요구에 아랑곳하지 않고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1989년 6월 호메이니 뒤를 이어 국가 최고지도자이자 군 최고통치권자에 오른 하메네이의 임기는 종신이다. 시위대가 하메네이 퇴진을 요구하는 것은 신정체제를 거부한다는 의미지만, 하메네이는 자신의 제자인 라이시 대통령이나 차남 모즈타바를 후계자로 내세우려는 속내까지 드러내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신정체제가 43년 만에 최대 위기에 직면했음에도 하메네이는 이슬람 혁명을 수호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69호에 실렸습니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