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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뇌 닮은 초거대 AI, 활용 무한대”…개발 경쟁 불붙었다[인사이드&인사이트]

입력 | 2022-12-19 03:00:00

국내외 빅테크 시장선점 경쟁 치열



‘미치광이 과학자처럼 스팀펑크 스타일로 불꽃 튀는 화학물질들을 섞고 있는 곰돌이들’이라는 텍스트를 입력했을 때 오픈AI의 AI화가 ‘달리(DALL-E)2’가 만들어낸 이미지. 오픈AI 제공

남혜정 산업1부 기자


《“넌 이름이 뭐야?”

“사만다.”

“이름을 어떻게 갖게 됐어?”

“좀 전에 (네가) 이름을 물었을 때 0.02초간 책에서 18만 개의 이름을 읽고 골랐어.”

2014년 개봉한 영화 ‘그녀(HER)’에서 주인공 테오도르와 인공지능(AI) 운영체제 사만다의 대화다. 테오도르는 ‘당신에게 귀 기울여주고 당신을 이해하고 알아줄 존재, 단순한 운영체제가 아닌 하나의 인격체’라는 광고를 보고 AI를 구매한다. 사만다는 주인공의 비서이자 연인 역할을 한다.

공상과학 영화 속 얘기였던 인간의 뇌를 닮은 AI의 등장이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안부를 묻거나 다양한 주제의 질문을 이해해 답변을 내놓고, 더 나아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등 창작의 영역까지 진출했다. 활용 영역이 무한대여서 국내외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들은 ‘초거대 AI’ 시장 선점을 위한 치열한 경쟁에 돌입했다.》






○ ‘인간의 뇌’를 닮은 초거대 AI

초거대 AI는 인간의 뇌와 매우 흡사하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학습해 스스로 판단하고 추론하는 차세대 기술이다. 해외 주요 빅테크 기업들은 일찍이 초거대 AI 연구개발에 앞장섰다. 경쟁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것은 2015년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와 벤처투자자 샘 올트먼 등이 설립한 세계 최대 AI 연구재단인 ‘오픈AI’다. 이달 1일 오픈AI는 AI 자연어 처리 모델인 ‘GPT-3.5’를 기반으로 만든 챗봇 ‘챗(chat)GPT’를 공개하며 주목을 받고 있다. ‘챗GPT’는 단순 검색부터 사용자 요청에 맞춘 편지나 보고서, 시, 소설도 써낸다. 엔지니어가 풀기 힘든 복잡한 코딩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내년에 나올 후속 모델 GPT-4는 기계가 인간과 얼마나 비슷한지 판별하는 ‘튜링테스트’를 통과했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구글도 지난달 미국 뉴욕에서 AI 연례 콘퍼런스를 개최하고 진보된 AI 기술을 선보였다. 구글은 이 자리에서 전 세계 1000개의 언어를 지원할 AI 모델을 구축해 온라인에서 제약 없이 의사소통하고 정보를 수집하도록 하는 장기 연구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8월에는 초거대 AI 모델인 ‘PaLM’을 기반으로 사람의 말을 능동적으로 이해하는 로봇 ‘PaLM-SayCan’을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공개하기도 했다. 이 로봇은 ‘음료수를 쏟았어. 도와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이해하고 ‘쏟은 콜라 캔을 버리고, 주방에서 닦을 스펀지를 가져온다’는 복합적인 행동을 실행했다. 기존 로봇이 ‘물 가져와’ 같은 단순 명령에만 반응하는 것과 비교하면 한층 진화된 형태다.
○ 국내 기업들도 산업 전반에 초거대 AI 활용
국내 주요 기업들도 초거대 AI 기술을 다양한 산업에 접목하며 경쟁력을 키워 가고 있다. 영국 데이터 분석 업체인 토터스인텔리전스가 초거대 AI를 포함한 ‘글로벌 AI 경쟁력’을 조사한 결과 한국은 조사 대상 62개국 가운데 7위에 올랐다. AI 플랫폼과 알고리즘 등 기술역량은 3위로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받고 있다.

LG AI 연구원은 국내 최초로 개발한 초거대 멀티모달 AI ‘엑사원’을 LG 계열사와 국내외 파트너사들과 협업해 산업현장에 직접 활용하고 있다. 멀티모달 AI는 이미지와 텍스트, 음성, 비디오 등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를 학습해 활용하는 모델을 가리킨다.

LG전자는 주 단위로 국가별, 지역별 제품 판매 수요를 예측하는데, LG이노텍은 카메라 렌즈와 센서의 중심을 맞추는 공정에 AI 기술을 도입했다. 개인 맞춤형 항암 백신 신항원과 차세대 배터리인 리튬황 배터리 전해질, 차세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고효율 발광 재료를 발굴하는 등 난제 해결에도 활용되고 있다. LG그룹은 앞으로 5년간 AI·데이터 분야 연구개발에 3조6000억 원을 투입해 더욱 차별화된 기술을 확보할 계획이다.

멀티모달 AI 화가 ‘칼로’를 선보인 카카오브레인은 헬스케어 분야에 도전한다. 카카오브레인은 흉부 엑스레이 영상으로 판독문 초안을 작성하는 모델 ‘AI 캐드(CAD)’를 개발 중이다. 내년 상반기에 이를 출시하고 실제 의료 분야에서 활용하는 것이 목표다. 동시에 초거대 AI에 화학 분자와 유전 데이터, 물리·화학 이론 등을 학습시켜 신약 개발 플랫폼을 만들 계획이다.

네이버는 지난해 공개한 초거대 AI ‘하이퍼클로바’가 일상 속에서 널리 활용되도록 다양한 서비스를 출시하고 있다. 홀몸노인을 위한 AI콜 서비스인 클로버케어콜이 대표적이다. 올해 3월에는 초거대 AI를 활용해 코딩 없이도 애플리케이션이나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노코드’ 기반 도구인 ‘클로바스튜디오’도 출시했다. KT도 초거대 AI ‘믿음’을 상용화해 AI 전문상담, AI 감성케어 등 인간과 공감하는 AI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 2024년 700조 규모로 성장…사회 갈등, 윤리 문제는 과제

기업들이 초거대 AI 개발에 매진하고 있는 것은 이 기술이 향후 활용될 수 있는 범위가 무한대에 가깝기 때문이다. 학습시킬수록 비용이 적게 들어 큰 비용 없이 여러 분야에 응용할 수 있어 ‘게임체인저’ 역할을 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초거대 AI를 포함한 전 세계 AI 시장 규모가 2024년에는 5543억 달러(약 726조13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로보틱스와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플랫폼, 헬스케어 등 초거대 AI가 우리 일상생활을 비롯한 산업 전반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예측했다. 배경훈 LG AI연구원 원장은 “전 세계 기업들이 초거대 AI에 관심을 갖고 투자를 강화하는 이유는 ‘콘텐츠 생성’과 ‘확장성’이라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라며 지금껏 없었던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하거나 영상 제작, 음악 작곡, 프로그래밍 코드 생성, 디자인 협업 등 다양한 응용 분야를 통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봤다.

초거대 AI 발전에 따른 일자리 감소 등 사회 갈등과 윤리 문제는 극복해야 할 과제다. 서민준 KAIST 김재철AI대학원 교수는 “지식노동에 AI가 접목되면 예전에 10명이 하던 일을 1, 2명이 해낼 수 있어 지식 노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올 것”이라며 “잘 활용하면 모두에게 득이 될 수 있지만 일자리 양극화 문제를 불러올 수도 있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인종차별 등 윤리적 이슈는 충분히 통제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유재흥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AI정책연구팀 팀장은 “편향성 논란이 있었던 챗봇 이루다의 경우도 1년간 재정비를 통해 문제점들을 개선했다”며 “미국의 ‘AI 권리장전’, 유럽연합(EU)의 ‘신뢰할 만한 AI 윤리가이드라인’처럼 각국 정부 차원에서도 규제가 마련되고 있다”고 했다.




남혜정 산업1부 기자 namduck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