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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일으킨 유럽 문명의 광기를 거부한 ‘헛소리’[영감 한 스푼]

입력 | 2022-12-20 03:00:00

다다이즘은 어떻게 예술이 됐나



마르셀 뒤샹의 ‘샘’과 만 레이의 ‘선물’은 변기와 다리미를 소재로 했다. 20세기 초 예술가들은 이런 기이한 작품을 통해 당시 전 세계를 뒤덮은 전쟁에 대한 환멸과 절망을 표현했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김민 국제부 기자


프랑스 파리의 한 상점. 술 취한 남자가 가게를 뒤지더니 다리미와 작은 못 여러 개, 접착제를 사 들고 갑니다. 이 남자는 젊은 예술가 만 레이(1890∼1976). 그는 다리미 바닥에 못을 일자로 붙입니다. 개인전에서 이를 ‘선물’이라는 작품으로 발표합니다.

이 일화에는 기이한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첫째, 왜 다리미를 샀을까? 둘째, 다리미를 왜 못 쓰게 만들지? 셋째, 이게 예술 작품이라고? 술에 취해 한 이상한 짓을 작품이라 우기는 건 아닐까요? 유명하면 똥을 싸도 박수를 쳐 준다는데 다리미에 못쯤이야 봐줄 만한 걸까요?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다다이즘 예술’의 시대로 떠나보겠습니다.
모든 정해진 것을 거부한다
레이의 ‘선물’은 이 작품보다 더 유명한 마르셀 뒤샹(1887∼1968)의 ‘샘’이 탄생한 방식과 비슷합니다. 뒤샹은 변기의 기능을 제거하고, 물이 흐른다는 이유로 ‘샘’이라는 작품으로 만들었죠. 레이는 천을 다리는 기능을 못으로 없애 버립니다. 즉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인 물건의 기능을 없애고 ‘낯설게 보기’를 제안합니다. 이는 퍼포먼스, 콜라주, 우연성과 더불어 ‘다다 예술’의 대표적 방식입니다.

다다는 20세기 초 스위스 취리히, 독일 베를린,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 등 세계 여러 도시에서 일어난 예술 형태입니다. 두드러진 출발점은 1916년 취리히의 문화 공간 ‘카바레 볼테르’였죠. 이곳에 모인 예술가들은 이해할 수 없는 단어로 된 시를 읊거나, 괴상한 옷차림으로 퍼포먼스를 했습니다. 시인 휴고 볼이 발표한 시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gadji beri bimba/glandridi lauli lona cadori…”

알 수 없는 단어들의 나열이죠. ‘다다’라는 이름도 독일 예술가 리하르트 휠젠베크가 사전의 아무 페이지나 펼쳐 나온 단어로 정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사전 속 다다의 뜻은 아이들이 타는 ‘목마’였죠. ‘다다’라는 단어와 그것이 정해진 과정 자체에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의미 없는 다리미, 의미 없는 소변기, 의미 없는 시…. 세상이 정한 모든 것을 거부하고 어떤 인과 관계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다다’에 담겨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바보가 되어 헛소리를 하려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이러한 태도엔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수천만 명이 죽은 미쳐 돌아가는 세상

제1차 세계대전의 공포를 담은 조지 그로스의 작품 ‘폭발’.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1916년은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지 2년 차에 접어드는 해였습니다. 전쟁을 피한 예술가들이 중립국인 스위스로 모였습니다. 그 중심지가 취리히였습니다. 즉 ‘다다’는 세계대전이라는 비극 속에서 탄생한 예술입니다.

전쟁 전 유럽은 산업혁명을 비롯한 과학, 기술 발전을 이뤘습니다. 그런데 발달한 기술이 낳은 무기들이 당시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죽게 만들었죠. 군인 900만 명이 전사한 것은 물론, 간접적 영향까지 합치면 민간인 130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예술가들은 문명에 대해 환멸과 절망을 느꼈습니다. 과거에 정해진 모든 것들을 거부하게 된 이유입니다.

‘카바레 볼테르’ 멤버였던 예술가 마르셀 양코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문명에 신뢰를 잃었다. 모든 것은 파괴되어야 한다. 우리는 백지에서 다시 시작할 것이다.”
미친 세상을 흔들어 깨우는 헛소리
여기서 레이의 ‘선물’에 대한 질문에 다시 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왜 다리미인가?’에 대한 답은 ‘그냥’입니다. 이유를 붙이고 근원을 찾는 것은 과거 문명의 태도니까요. 둘째 ‘다리미를 왜 못 쓰게 만들었나?’의 답은 ‘의미가 없어서’입니다. 다리미를 비롯한 모든 기술 발전은 전쟁으로 귀결되어 무의미한 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질문, 이게 왜 예술인가? 그 답은 작가가 유명해서가 아닙니다. 바로 “시대를 증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레이의 ‘선물’과 뒤샹의 ‘샘’은 단순히 충격을 주는 차원을 넘어섭니다. 바로 유럽 문명이 줄곧 추종한 ‘이성’에 대한 맹신에 의문을 제기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정해진 것을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보라고 제안합니다. 변기는 변기가 아니고, 다리미는 다리미가 아니라고 말이죠. 이 명제는 유럽 문명으로 확장됩니다. “인간은 가장 우월한 존재가 아니고, 이성만이 답은 아닐 수 있다. 그다음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우선 우리를 괴물로 만들어 온 모든 것들을 파괴하겠다”고 예술가들은 외칩니다.

여기서 ‘다다’ 예술가들이 꺼내 드는 무기 하나가 있습니다. 그건 바로 웃음을 유발하는 ‘농담’입니다. ‘변기가 샘이라니’, ‘못 쓰는 다리미가 선물이라니’…. 이런 황당한 소리를 통해 예술가들은 ‘무의미’를 받아들이되 웃음을 통해 앞으로 나아갈 힘을 만들어냅니다. 풍차를 향해 달려드는 돈키호테처럼, 즐겁게 앞뒤로 흔들리는 다다 목마처럼 말입니다.

이 무의미한 다다 목마의 움직임은 현대 미술을 영원히 바꿔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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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국제부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