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최근 “남성 직원들만 숙직 근무를 하도록 하는 건 불리한 대우”라며 남성 근로자가 제기한 진정을 기각했다. 이를 두고 2030 남성 사이에선 “남성만 숙직을 하는 것은 역차별”이라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반면 2030 여성들은 “여성도 숙직을 할 수 있지만 그럴 만한 환경이 부족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숙직 방식 개편과 환경 정비가 동시에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 인권위 “남성만 숙직하는 건 차별 아냐”
20일 인권위에 따르면 NH농협은행 통합IT센터에 근무하는 한 남성 직원은 지난해 8월 “여성 직원에겐 주말 및 공휴일 일직을 하도록 하고, 남성에게만 야간 숙직을 전담하게 한 것은 불리한 대우다. 시정을 권고해달라”는 취지의 진정을 냈다.
그러나 인권위는 15일 “숙직이 (여성이 하는) 휴일 일직보다 6시간 정도 길지만 중간에 5시간 휴식을 취할 수 있고 4시간의 보상 휴가도 주어진다. 숙직과 일직의 업무가 크게 다르지 않고 대부분 내근이어서 (숙직이) 특별히 더 고된 업무라고 보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또 “여성에게 일률적으로 숙직 근무를 부과한다면 매우 형식적이고 기계적인 평등에 불과하다”며 “여성들은 폭력 등의 위험 상황에 취약할 수 있고, 여성들이 야간에 갖는 공포와 불안감을 간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 “남성 역차별” VS “환경 개선 먼저”
진정인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결정문을 게시하며 “결론을 정해놓고 짜맞추기 한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일부 누리꾼들도 “고된 업무가 아니고 내근인데 왜 남성만 하라는 것이냐” 등의 댓글을 달며 인권위를 비판했다.
실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에선 여전히 남성만 숙직을 하는 곳이 많다. 동아일보가 광역자치단체 17곳과 정부 부처 및 유관기관 11곳 등 28곳을 조사한 결과 16곳은 남성이 숙직 근무를 전담했고, 8곳은 남녀가 같이 하고 있었다. 4곳은 숙직을 폐지했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숙직 방식이나 성별 분배에 대한 정부 내 통일된 기준은 없으며 각 기관이 자체 기준에 따라 운영하면 된다.
숙직 방식에 대한 의견은 엇갈린다. 남성만 숙직을 하는 서울의 한 구청 남성 공무원 황모 씨(30)는 “야간 근무 환경이 위험해 남성만 하는 거라면 일직과 숙직 수당이 같은 이유가 뭔가”라고 지적했다. 반면 여성들 사이에선 “근무 환경이 정비된다면 우리도 숙직을 할 수 있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취업준비생 이모 씨(23·여)는 “남녀가 분리되지 않는 숙직실 등의 문제부터 개선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기욱기자 71wook@donga.com
권오혁기자 hyuk@donga.com
세종=박희창기자 rambl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