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왼쪽)와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오른쪽)가 지난 16일 국회에서 김진표 국회의장이 주재한 원내대표 회동에 참석해 마스크를 벗고 있다. 김동주기자 zoo@donga.com
내년도 예산안 처리를 위한 여야 협상이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639조 원에 달하는 내년도 나라 살림이 5억 원에 불과한 예산 항목 때문에 발목이 잡혀 있는 형국이다.
여야는 행정안전부 경찰국과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예산을 놓고 지루한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위법하게 설치된 두 기관에 대해 예산이 배정돼서는 안 된다며 ‘삭감’을 주장하고 있고, 국민의힘은 합법적으로 설치된 국가기관이라며 ‘사수’를 외치고 있다.
국민의힘은 예산 삭감을 주장하는 민주당의 태도를 ‘대선 불복’으로 규정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지난 19일 “합법적으로 설치된 국가기관을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인정해주지 않겠다는 것은 그야말로 대선 불복이자 정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이라며 “일부 예산이 삭감될 수는 있어도 전액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말은 그 기구를 반신불수로 만들어서 일 못 하게 만들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말했다.
주 원내대표는 경찰국에 대해 “윤석열 정부는 행안부 장관이 치안 책임자이고 경찰 인사의 제청권자이기 때문에 법에 따라 투명하게 정부조직법 체계 안에서 하기 위해 경찰국을 설치했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그는 인사정보관리단에 대해선 “예전에는 인사혁신처에서 민정수석실에 위탁했지만 이번에는 법무부에 위탁했다”며 “법무부 장관에 일체 보고를 하지 않고 검사 출신이 단장을 맡지 않는 것으로 했기 때문에 민주당이 우려하던 것들이 말끔히 제거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 원내대표는 21일 예산안 협상과 관련해 “변동된 것이 별로 없다. 경찰국과 인사정보관리단 문제와 지역상품권, 법인세 부분에서 진전이 없어서 홀딩된 상태”라고 밝혔다.
민주당도 국민의힘을 ‘용산 아바타’로 규정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21일 “복합위기에 내몰린 민생 경제를 위해 민주당은 대승적 차원의 양보를 거듭해 왔다. 이제는 집권여당 국민의힘이 결단해야 한다”며 “또다시 용산의 깨알 같은 지침에 국회의 예산안 처리가 더 이상 지연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박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은 더 이상 ‘용산 바라기’가 아닌 ‘민생 바라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이제 더 이상 시간 끌지 말고 국정에 무한책임을 진 집권여당으로서 민생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결단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박 원내대표는 전날에도 “‘용산 아바타’로 전락한 여당과 도돌이표 협상을 해봤자 대통령 거부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교착 상황이 길어지면서 연일 부정적 민심만 높아지고 있다”며 “국민의힘은 지금이라도 의장 중재안을 전면 수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왼쪽)와 박홍근 원내대표가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앞서 김진표 국회의장은 법인세 최고세율을 현행 25%에서 22%로 낮추자는 정부안을 놓고 여야가 합의점을 찾지 못하자 법인세 1%포인트 인하를 중재안으로 제시했다. 김 의장은 경찰국과 인사정보관리단 예산에 대해선 예비비로 편성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은 수용 입장을 밝혔고, 국민의힘은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히면서 합의는 이뤄지지 못한 상태다.
이처럼 여야는 법정 시한인 지난 2일과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9일에 이어 김 의장이 제시한 15일과 19일 등 네 차례에 걸쳐 처리 시한을 지키지 못했다. 2014년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정기국회 내 예산안 처리 무산이라는 오점을 남긴 데 이어 처리 지연 사태가 연일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 안팎에선 예산안 처리가 연말까지 지연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여야가 합의점을 찾지 못할 경우 헌정사상 처음으로 준예산을 편성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다. 하지만 경제 위기 속에 끝없는 정쟁을 벌이는 것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는 만큼 여야가 성탄절 전후에 극적 타협을 모색하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온다.
고성호 기자 sung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