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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내 韓 교민들, 확진 급증에 혼란… 약 동나자 품앗이 나서[글로벌 현장을 가다]

입력 | 2022-12-22 03:00:00

12일 밤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의 한 약국 앞에 해열제 등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약국 바깥에서도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각종 의약품을 사려는 시민이 늘어나 곳곳에서 의약품 품귀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7일 중국이 ‘제로 코로나’ 정책을 폐지하겠다고 선언한 후 첫 주말이 지난 12일 베이징 거주 한국 교민들의 위챗(중국판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는 긴급 문자가 속속 올라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갑자기 약을 구하기 힘들어졌다. 감기약 구할 수 있느냐” 등이었다. 이는 10, 11일 주말 이틀 동안 베이징의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한 여파와 무관하지 않다. 이달 초까지 약 3만 명으로 추산되는 한국 교민 중 단 1명의 확진자도 없었지만 주말에만 최소 800명이 양성 판정을 받았다는 얘기가 떠돌았다.》







확진자 급증으로 약을 구하기 힘들어지자 일부 교민은 한국인 의사들을 중심으로 긴급 대책방을 별도로 만들었다. 증상이 심한 환자들에게 약을 먼저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나머지 확진자들은 위챗을 통해 한국 교민들끼리 ‘약 품앗이’에 나서기도 했다. 대다수 한국인은 평소 한국에서 가져온 감기약 등을 집에 비치해 두므로 이를 활용해 당장 약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먼저 제공해줄 수 있는 것이다.
의약품 부족에 레몬 사재기

지난달 말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퇴진 구호까지 등장한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가 발생하자 당국은 방역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3년간 제로 코로나로 고통받던 시민들도 환영했다. 문제는 갑작스러운 정책 전환으로 신규 감염자가 급증해 이로 인한 혼란을 한국 교민들뿐만 아니라 중국 주민들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는 점이다.

가장 먼저 의약품이 동나기 시작했다. 확진자가 증가하면서 해열제, 기침·가래약, 인후염약 등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 탓이다. 특히 당국의 확진자 통계에 대한 불신 때문에 주민들이 의약품 사재기에 나서면서 품귀 현상을 부추겼다.

시민들은 공식 통계보다 훨씬 많은 이가 감염됐을 것으로 보고 코로나19에 따른 통증을 완화시켜 주는 타이레놀은 물론이고 비슷한 효능이 있다는 한방 독감약 롄화칭원(連花請瘟) 등을 앞다퉈 사들이고 있다. 평소보다 3, 4배 웃돈을 줘도 관련 약품을 구하지 못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당국이 “불필요한 사재기가 의료 체계에 과부하를 준다”며 의약품을 비축하지 말라고 하지만 먹히지 않는다. 의약품을 구매하기 위해 밤늦게까지 약국 앞에 길게 줄을 서는 풍경이 여전하다. 일부는 온라인을 통해 대만 의약품까지 주문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화이자의 경구용 치료제 ‘팍스로비드’의 인도산 복제약을 구매하려는 수요 또한 급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은 팍스로비드의 소매 판매를 허용하고 있지만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시중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다 보니 웨이보 등 소셜미디어에는 인도산 복제약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복제약이 정품인지 등을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부작용이 나타날 우려가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약을 구할 수 없는 일부 시민은 코로나19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소문이 퍼진 복숭아(황도) 통조림과 레몬까지 사재기하고 있다. 미국 NBC방송은 “중국은 지금껏 대규모 확산을 피해 왔기 때문에 오히려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졌다”며 “잘못된 소문에도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전했다.
택배, 음식배달원 부족
19일 오전 11시 30분경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의 대형 쇼핑몰 앞. 유명 식당 수십 개가 몰려 있는 이 쇼핑몰 일대에서는 매일 점심때마다 50, 60명의 음식 배달원이 장사진을 친다.

이날은 달랐다. 배달원들이 두고 간 오토바이들만 잔뜩 주차돼 있을 뿐 실제 보이는 사람은 5, 6명에 불과했다. 중국 최대 음식배달 서비스 업체 ‘메이퇀’의 노란색 유니폼을 입은 배달원 장모 씨는 “최근 코로나19로 배달 주문이 급증했지만 대부분의 배달원 또한 코로나19에 걸려 일을 못 하고 있다”고 했다.

이달 초까지만 해도 베이징의 음식 배달원들은 매일 유전자증폭(PCR·핵산) 검사를 했다. 24시간 이내 음성 판정을 받았다는 증명서가 있어야 일할 수 있었다. 장 씨는 “그간 코로나19에 걸리는 배달원이 많지 않았는데 불과 일주일 새 대다수가 확진자가 됐다”고 전했다.

택배원들이 대부분 코로나19에 감염되면서 택배 업무는 사실상 중단됐다. 차오양구에 사는 직장인 우모 씨는 “최근 2주 동안 온라인으로 주문한 물건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판매자가 먼저 주문을 취소하는 사례도 세 차례나 경험했다. 모두 택배원 부족으로 배달을 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경제 악영향 우려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는 당국이 방역 정책을 완화한 것은 경제 회복 및 성장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시 주석의 3번째 임기가 공식 시작되는 첫해인 내년까지 경제가 회복되지 않으면 민심 이반이 심각해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제로 코로나 폐지로 일정 부분 경제 회복이 기대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확진자 증가로 인한 소비 침체, 물류 중단에 따른 공급망 혼란 등이 얼마나 빨리 안정되느냐가 당국이 목표로 하는 내년 성장률 5%대 달성 및 내수 활성화를 판가름할 것으로 보인다.

19일(현지 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 곳곳에서 직원 부족으로 공장의 생산 라인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으며 공급망 혼란 또한 가중되고 있다고 전했다. 상당수 직장인은 재택근무를 하고 있지만 일부 공장에서는 감염된 노동자들이 병가를 내 일손 부족을 겪고 있다. 이로 인해 세계은행은 20일 올해와 내년 중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기존 2.8%에서 2.7%로, 4.5%에서 4.3%로 하향했다. 세계은행은 “중국의 성장 전망에 상당한 위험 요인이 있다”면서 “코로나19 상황에 대한 정책 대응과 가구·기업의 대응 등에 불확실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최근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의 확산이 이런 우려를 더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베이징에서만 인구 2200만 명의 절반 이상이 오미크론 변이에 감염됐다는 추정을 하고 있다. 허베이성 북부의 한 자동차 조립 공장 관리자는 노동자들이 공장과 숙소만 오갈 수 있도록 한 ‘폐쇄 루프’ 체제를 복원할 계획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노동자가 남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아직 최악의 상황이 오지 않았다며 소비 침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우쭌유(吳尊友) 질병예방통제센터 전염병학 수석 전문가는 17일 한 세미나에서 올겨울에 중국이 세 차례 코로나19 파동을 겪을 것으로 예상했다. 현 1단계 파동이 내년 1월 중순까지 이어지고 같은 달 21일 설 연휴(춘제)를 기점으로 2차 파동, 춘제 귀성객이 복귀하는 내년 2월 말∼3월 중순에 3차 파동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k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