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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놀자!/함께 떠나요! 세계지리 여행]천연가스 생산량 2위 러시아가 유럽에 가스 공급을 멈춘다면…

입력 | 2022-12-23 03:00:00

러시아 전쟁으로 가스 공급 멈춰… 천연가스 의존도 높던 유럽 비상
대체 수출국으로 카타르 찾았지만 연결된 파이프 없어 배 운송 선택
천연가스 옮기는 LNG 선박 수요↑
한국이 LNG 선박 기술 가장 우수, 국내 조선업계에 주문량 늘어 호황



러시아에서 유럽연합(EU)으로 천연가스가 운반되는 거대 파이프라인. 올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EU와의 갈등이 커지면서 천연가스 공급이 수차례 중단됐다. 게티이미지코리아


22일은 1년 중 밤이 가장 긴 절기인 동지였습니다. 내년 1월 5일은 연중 최고의 추위를 자랑하는 절기인 소한입니다. 보통 동지에서 소한에 걸친 보름은 매서운 추위로 유명한 시기입니다.

그런데 이 추위는 우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북반구인 유럽 역시 이 시기가 몹시 추운 시기입니다. 인간이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기 위해선 난방이 필수적입니다. 우리에겐 온돌이라는 난방 문화가 있지만 유럽 사람들은 과거부터 공기를 데워 난방했습니다. 나무 장작을 태우는 벽난로, 가스를 이용한 가스히터, 전기를 이용한 히트펌프까지 모두 공기를 데운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공기를 데워 난방하는 방식은 열효율이 떨어지기 마련이며, 이는 필연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 소비되는 에너지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천연가스입니다. 오늘의 세계 지리 이야기는 이 천연가스를 두고 벌어지는 지정학적 갈등과 이것이 우리나라에 미치는 ‘나비효과’에 대해 다뤄 보도록 하겠습니다.
○ 러시아 천연가스에 의존하는 유럽
천연가스는 불이 붙으면 열을 내며 연소하는 기체인 가스입니다. 그런데 땅속에서 채굴할 때부터 가스 형태를 띠고 있어 ‘천연가스’라고 부릅니다. 보통 석유와 함께 매장되어 있어 석유가 생산되는 곳엔 늘 천연가스도 함께 생산됩니다. 따라서 석유처럼 천연가스 역시 자원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큽니다.

지리학에선 보통 이걸 자원의 편재성이라고 합니다. 자원이 특정 몇 곳에 편중되어 분포한다는 것입니다. 천연가스뿐만 아니라 석유, 석탄, 철광석, 구리 등 각종 에너지 자원과 지하자원이 모두 편재성이 큽니다. 2021년 기준 전 세계 천연가스 생산 1위 국가는 미국입니다. 그 뒤는 러시아와 이란, 캐나다, 카타르 순으로 이어집니다.

그중 러시아는 국토 면적이 세계에서 가장 넓습니다. 그러다 보니 천연자원도 풍부합니다. 러시아와 접한 유럽은 이 러시아의 자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특히 유럽의 러시아에 대한 천연가스 의존도는 매우 높습니다.

2021년 기준 유럽연합(EU)이 사용하는 에너지의 24%가 천연가스이며, 이 천연가스 중 36%를 러시아산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유럽은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를 수입하기 위해 거대한 파이프라인을 설치했습니다. 러시아에서 해외로 뻗어가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은 모두 10개이며 이 중 7개가 유럽을 향해 뻗어 있습니다. 유럽의 겨울은 러시아의 손에 달린 셈입니다.
○ 천연가스 위기에 한국이 호황?
그런데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습니다. 전쟁 개시와 함께 침공당한 우크라이나를 향한 각국의 지원이 이어졌습니다. 국제사회에서 전범 국가라며 지탄받으며 불리한 입장에 처한 러시아가 선택한 대책은 유럽으로의 천연가스 공급 차단이었습니다. 자원을 무기화한 셈입니다.

러시아가 유럽에 공급하던 천연가스가 적게는 30%에서 많게는 80%까지 감소했습니다. 러시아에 천연가스를 의존하던 유럽 각국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고, 국제시장에서의 천연가스 가격은 폭등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예상보다 장기화하자 유럽 각국은 겨울을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겨울은 난방 연료로 사용하는 천연가스의 소비량이 급증하는 시기입니다. 유럽 각국은 겨울에 러시아가 천연가스 공급을 차단하는 것에 대비해서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대체할 방안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러시아를 대체할 천연가스 수출국을 찾던 유럽의 눈에 든 곳이 바로 카타르입니다. 사실 미국도 상당한 천연가스 생산국이지만 유럽에서는 대서양을 건너야 하는 먼 거리에 있습니다. 호주도 천연가스 수출 세계 1위 국가지만 미국보다 더 멉니다.

반면 카타르는 유럽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천연가스 부국입니다. 유럽은 즉각 카타르와 천연가스 수입 계약을 맺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러시아의 천연가스는 7개의 파이프라인을 통해 유럽으로 바로 운송되지만, 카타르와 유럽은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이 건설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천연가스를 운송하는 방법이 러시아와는 좀 다릅니다. 우선 기체 상태의 천연가스를 압축 냉각시켜 액화천연가스(LNG)로 만듭니다. 이렇게 부피를 줄인 천연가스를 거대한 선박에 실어서 유럽으로 가져오는 겁니다.

이 LNG를 운송하는 선박을 건조하려면 높은 기술력이 필요합니다. LNG 선박을 세계에서 가장 잘 만드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유럽은 카타르에서 천연가스를 더 많이 가져오기 위해 더 많은 LNG 선박이 필요했고, 덕분에 한국 조선업계는 지금 쏟아지는 LNG 선박 주문 덕에 일손이 부족할 지경입니다. 머나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우리나라 조선업에 영향을 미친 겁니다. 이런 나비효과가 바로 세계화 시대의 지정학적 특징입니다.
○ 전쟁 끝나야 에너지 불안도 안정
러시아가 유럽으로의 천연가스 수출을 엄청나게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유럽 각국은 겨울철에 사용할 천연가스의 95% 이상을 확보했습니다. 또 올해 겨울이 예년보다 따뜻할 것으로 보여 걱정하던 겨울철 ‘난방 대란’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전쟁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태입니다. 전쟁이 끝나지 않는 이상 유럽의 천연가스 수급은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유럽 각국은 친환경 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리려고 하기에 석탄이나 원자력 에너지 등의 사용을 기피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석탄, 석유 같은 구시대의 화석연료보다는 오염 물질 배출이 적어 화석연료와 미래의 친환경 재생에너지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천연가스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이 끝나 우크라이나에 평화가 찾아오고, 유럽 각국이 에너지 불안 문제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합니다.


안인호 마포중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