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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황규인]축구 만화 하나가 일본 축구에 끼친 영향

입력 | 2022-12-23 03:00:00

황규인 스포츠부 차장


“쓰바사, 넌 세계로 나와야 해.”

독일에서 축구 유학 중이던 와카바야시 겐조(골키퍼)는 친구이자 라이벌인 오조라 쓰바사(공격형 미드필더)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에서는 ‘천재’ 소리를 들었던 자신이 독일 유학 첫날부터 같은 팀 공격수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으며 결국 독일의 ‘젊은 황제’ 슈나이더에게 완패했다고 고백한다. 역시 일본에는 적수가 없다는 평가가 따라다니던 쓰바사는 이 말에 브라질 유학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결국 ‘꿈의 팀’ FC 바르셀로나 입단에 성공한다.

이런 내용을 담은 ‘캡틴 쓰바사’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폐회식 당시 다음 대회 개최국인 일본을 상징하는 콘텐츠로 등장했던 축구 만화다. 이 만화는 일본을 넘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만화 속에서 쓰바사가 입단한 바르셀로나는 실제로 입단 환영 성명을 냈고, 라이벌인 레알 마드리드도 ‘쓰바사의 선택이 안타깝다’고 논평을 발표했다.

1981년 연재를 시작한 쓰바사가 성공을 거둔 뒤 일본 축구 만화에서는 ‘주인공=공격형 미드필더’ 공식이 자리를 잡았다.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황금 사중주’라고 불렸던 나카무라 슌스케(44), 나카타 히데토시(45), 오노 신지(43), 이나모토 준이치(43) 가운데 이나모토(수비형 미드필더)를 제외하고 나머지 세 선수가 전부 공격형 미드필더였던 건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일본 축구 선수들도 정말 ‘세계’로 나가기 시작했다. 2002 한일 월드컵이 끝난 2002∼2003시즌 일본 선수 다섯 명이 유럽 5대 리그(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잉글랜드 프랑스)로 진출했다. 이 시즌 한국 선수 가운데는 차두리(42) 한 명만이 5대 리그 소속이었다. 이번 시즌 유럽 5대 리그 소속 일본 선수는 총 16명으로 한국(6명)보다 2.7배가 많다.

이들의 활약을 바탕으로 일본은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에서 최종 9위에 오르는 성과를 냈다. 한국은 16위였다. 일본은 또 한일전에서 세 경기 연속 3-0 승리를 기록 중이기도 하다. FIFA 랭킹을 봐도 2017년 6월 1일 이후 5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일본이 한국보다 순위가 높다. 월드컵 16강 진출 횟수도 일본(4번)이 한국(3번)보다 많다. 이제 확실히 한국보다 일본이 ‘세계 수준’에 더 가깝다.

어쩌다 생긴 일도 아니다. 일본은 2005년부터 ‘2050년에는 월드컵에서 우승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작은 과제’를 차근차근 해결해 가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4년 뒤 북중미 대회 때는 참가국이 48개국으로 늘어나 본선 진출에 큰 걱정이 없다’고 안심하는 목소리가 더 크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는 대표작 ‘어린 왕자’에 “배를 만들고 싶다면 사람들에게 나무를 가져오게 하고 일감을 나눠주는 일을 하지 말라. 대신 그들에게 저 넓고 끝없는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 줘라”라고 썼다. 한국 축구에도 ‘쓰바사’가 필요하다.

황규인 스포츠부 차장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