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인류의 역사는 옷과 함께했다. 동물과 달리 몸의 털을 줄이고 지능을 키우면서 인간은 기후와 환경에 적절한 옷을 만들어 입어야 했다. 옷은 단순히 몸을 가리는 도구가 아니다. ‘옷이 날개’라는 말처럼 사람이 자신의 지위와 정체성을 상징하는 가장 좋은 도구는 바로 옷이다. 지금도 명품이라고 하면 대부분 옷을 의미하는 이유다. 모피가 추운 겨울을 대표하는 명품이라면 실크는 지역과 시대를 불문하고 우리의 최고 사랑을 받은 명품이다. ‘실크로드’라는 말에 숨겨진 진짜 ‘실크’가 가진 수천 년 명품의 역사를 살펴보자.》
황금 못지않은 명품
실크로드에서 발견된 2000년 전 중국제 실크. 강인욱 교수 제공
실크의 기원은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미 신석기시대부터 중국은 물론이고 인도와 중앙아시아 등 세계 곳곳에서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낸 흔적이 보인다. 누에 벌레는 뽕잎을 먹고 입으로 다시 토해서 실을 뿜어 고치를 만든다. 예전부터 고치 안에 있는 번데기는 주요한 단백질원으로 널리 사용됐다. 고치 속 번데기를 꺼내 먹는 과정에서 고치가 가진 실의 특성을 자연스럽게 알았을 것이다. 다만, 야생의 누에에서 뽑아낸 원시적인 실크는 서로 끈적거리게 엉키고 거칠어 가공하기가 쉽지 않다. 실크가 명품으로 되는 데는 고르게 실을 잣는 양잠기술이 필요하다. 중국에서는 일찍이 한나라 시절에 양잠기술이 최절정에 달했다. 또한 그와 비슷한 시기에 신라를 건국한 박혁거세도 즉위 직후 6부를 돌면서 양잠을 권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듯 실크는 단순히 아름다움의 상징이 아니라 고대의 전문화된 기술을 의미한다. 최고의 ‘명품’이 나오기 위해서는 재료 자체보다는 최고의 기술이 중요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실크 두른 3000년 전 청동신상
그런데 최근 고고학 발굴을 통해 양잠의 신을 모시는 의식의 기원은 실제로는 중원지역이 아니라 남서부의 쓰촨 지역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고대 이래로 중원과는 다른 쓰촨 분지의 사람들은 고대에 파와 촉 사람이라는 뜻으로 파촉(巴蜀)이라고 불렸다. 유비가 세운 촉(蜀)나라로도 유명한 촉이란 이름의 한문은 뽕나무에서 기어 다니는 누에고치를 형상화한 것이다.
과거 진귀했던 실크는 동서 문명을 잇는 명품 교역품이었다. 중국 싼싱두이에서 발견된 3000년 전 청동 신상. 신상 중에는 비단을 두른 것도 있으니, 바로 양잠의 신이다. 강인욱 교수 제공
유목민 야성 잃게 한 매력
2017년 몽골 서부 알타이 산맥 근처 시베트 하이르한에서 출토된 약 2000년 전의 비단옷. 국립문화재연구원 제공
1920년대 몽골 노인울라 흉노 고분에서 출토된 실크. 국립문화재연구원 제공
그만큼 중국의 실크가 유명했다는 뜻도 되지만, 또 한편으로는 유목민의 멸망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황금보다 값비싼 실크를 몸에 걸치면 험한 말 타기를 제대로 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중국에서 망명한 흉노 선우의 신하는 비단을 좋아하다가는 결국 망할 것이라는 눈물의 상소를 올리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실크를 구입하는 데 막대한 부를 소모했고, 또 값비싼 비단옷을 입고 중국제 마차를 몰고 다니면서 흉노는 점차 유목민의 야성과 힘을 잃어갔다.
로마의 곳간 탕진시킨 실크
흉노뿐이 아니라 로마도 마찬가지였다. 로마는 기원전 55년에 파르티아와 벌인 카레이 전투에서 기록적인 패배를 기록했다. 2만 명이 죽고 1만 명이 포로로 잡혔지만 정작 파르티아는 100명도 안 되는 사상을 기록할 정도였다. 그 패배 와중에도 로마인들은 파르티아인이 두른 실크에 반했고, 이후 로마의 부를 탕진하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그야말로 나라를 망하게 하는 치명적인 유혹이기도 했다.
실크는 20세기 근대 일본을 대국으로 끌어올리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그 상징성을 근거로 2014년 일본은 근대 실크산업의 산실인 도미오카 제사장(실크를 뽑는 공장)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도미오카 제사장은 일본이 최초로 등재한 근대화 산업유산이기 때문이다. 고대에 양잠기술은 중국에서 고도로 발달했다. 하지만 근대 이후에는 서양에 뒤처졌고 일본은 프랑스로부터 현대적인 양잠기술을 도입해 현대화된 실크 제품을 생산했다. 과거의 전통을 현대의 기술로 개혁하는 ‘동도서기’의 상징인 셈이다. 이후 현대화된 양잠산업은 메이지 유신의 경제적 밑천이 돼 일본이 경제를 일으키던 1920년대에는 한 해 수출량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기도 했다.
실크는 동서 문명의 기원인 동시에 시대를 초월한 진정한 소프트 파워의 상징인 셈이다. 하지만 지금 실크의 위상은 예전 같지 않다. 그 대신 다양한 화장술로 자신을 가꾸거나 가상공간에서 자신의 모습을 바꾸고 있다. 재질만 바뀌었을 뿐 사람들은 여전히 실크 같은 명품 콘텐츠를 찾아 헤매고 있다. 반도체 같은 작고 가벼운 기술, 그리고 사람을 매혹시키는 한류라는 소프트 파워로 세계로 나아가는 우리에게 실크의 역사가 주는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는 이유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