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응방안 설명회서 분통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22일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열린 전세보증금 피해 임차인 설명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작정하고 속이려고 하는데 어떻게 피할 수 있겠습니까. 빚이 있는 사람이 계속 무리해서 집을 사면 중간에 제지가 됐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전세사기 피해자 이모 씨)
22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관. 수도권에 빌라와 오피스텔 1139채를 매입해 전세사기 행각을 벌이다가 사망한 일명 ‘빌라왕’ 김모 씨 사건의 피해자 100여 명이 회의실을 가득 메웠다. 국토교통부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대한법률구조공단이 개최한 피해자 대상 정부 대응방안 설명회에 참석한 이들이었다.
설명회 참석 대상은 김 씨에게 피해를 입은 세입자 중 HUG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에 가입한 440명이었다. 100여 명이 현장을 찾았고, 온라인 화상 회의로도 270여 명이 접속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이날 “전세사기는 세입자 개개인은 대처가 어렵다”며 “사기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처음부터 제도를 제대로 만들었어야 하는데 여러 허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사과했다.
또 다른 피해자는 “시세 대비 전세가격도 저렴한 편이었고, 계약을 맺으면서 모든 것을 꼼꼼히 살폈다. 하지만 도중에 임대인이 김 씨로 바뀐 사실을 계약 종료 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돼서야 알았다”고 호소했다.
김 씨에게 피해를 당한 세입자 중 HUG 보증보험 가입자는 614명으로, 나머지 500여 명은 미가입자다. 이들은 대부분 계약서에 ‘집주인에 임대사업자 보증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한다’는 특약을 넣는 등 집주인이 보험을 가입했다고 생각해 세입자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전세사기범 김모 씨 사건의 피해자 100여 명 앞에서 직접 설명회를 가졌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업계 전문가들은 악성 임대인 명단 공개, 집주인 세금 체납 정보 공개 등 알 권리를 강화하는 조치와 함께 근본적인 해결책도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임대차 계약을 중개할 때 임대인이 거래액의 일정 비율만큼 ‘사고 보험’에 가입하게 한다면, 전세 사고가 날 때 보험금으로 피해를 줄일 수 있다”며 “HUG의 보증보험 역시 계약서 작성 이후 가입 여부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확인할 수 있도록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정서영 기자 cer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