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에 서사를 입히는 작가들 정해나 ‘의문의 방문객’ 등 연작… 기승전결 화폭 담고 글로 설명도 최수진은 도와주는 동료 그려내 캐릭터 만든 뒤 시리즈로 소개… 아예 소설까지 영역 넓히기도
《경기 광주시의 한 미술관.
토끼장에 있던 토끼가 무더기로 실종된다.
이 일은 미미한 재산 피해 사건으로 종결됐지만 담당 형사는 찝찝함을 떨칠 수 없다.
잠입 수사를 진행하던 형사는 미술관에서 계속 사라지는 다른 존재들을 발견하는데….》
정해나 작가의 ‘몽타주Ⅰ’(2020년). 정 작가의 가상 이야기 속 형사가 토끼를 죽인 범인을 찾기 위해 골몰하다가 그린 그림이다(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정해나 작가의 ‘몽타주Ⅱ’(2020년). 각 작가·갤러리현대 제공
최근 ‘화가는 그림으로 말한다’는 암묵적인 철칙에 틈이 생기고 있다. 그림에 스토리텔링이 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움직임은 꽤 활발하다. 작품에 별도의 설명이 없는 경우 해석의 여지를 열어둔다는 장점이 있지만 어렵게 느껴질 때도 많다. 대중과의 적극적 소통을 위해 작가들은 작품에 이야기나 세계관을 넣는다.
빨간 열매에서 다홍색을 채집하고 있는 가상의 존재를 그린 최수진 작가의 ‘다홍채집’(2017년). 각 작가·갤러리현대 제공
도파민최 작가의 ‘Sweet Revolution’(2022년). 달콤함에 중독돼 가는 현실을 은유한다(오른쪽 사진). 왼쪽 사진은 도파민최 작가의 ‘Welcome to Jurassic Park 2’(2022년) 중 일부분. 각 작가·갤러리현대 제공
박민준 작가의 ‘알레치노’(2022년). 16세기 중반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즉흥 가면극 ‘콤메디아 델라르테’ 등장인물들을 모티브로 한 초상 연작 중 하나다. 각 작가·갤러리현대 제공
내년 2월 5일까지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열리는 박 작가의 개인전 ‘Ⅹ’는 이전 전시보다 서사를 생략하고 즉흥적으로 그린 작품도 많지만 이야기가 아예 없진 않다. 동물 가면을 쓴 9명의 초상회화 ‘콤메디아 델라르테’ 연작(2022년)이 대표적이다. 그는 “각 캐릭터만의 복식과 성격을 고려해 그들이 할 법한 대사를 작성해 전시장 초입에 리플릿 형식으로 배치했다”며 “글쓰기는 제 작품을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워 시작한 작업이다. 글과 그림의 관계를 살펴 감상하면 좋겠다”고 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