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잔의 중요성은 1950년대 오스트리아 와인잔 브랜드, 리델(Riedel)이 처음 발견해냈습니다. 리델이 1756년 유리 제조사로 시작해 오늘날 와인잔의 명가로 거듭난 이야기에 기분 좋게 취해 보시죠.
출처 : 리델
‘덕질은 장비빨’이란 말은 와인에도 통용됩니다. 와인을 집에서도 제대로 즐기기 위해 고급 오프너, 디캔터, 와인셀러 등 굿즈를 사 모으는 사람들이 늘었죠. 잔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지는 와인 특성상 잔을 모으는 사람들은 특히 많습니다. 명욱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과정 주임교수는 “지금 주류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취향 존중이다”며 “잔에 따라서 달라지는 술맛을 자신의 취향대로 찾아가는 소비자 성향 때문에 잔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라고 분석합니다.
와인을 꽃 피운 유리공예
과거 와인잔은 두껍고 유리 표면에 문양이 새겨지고, 색을 입힌 화려한 모양이었다_출처 : 리델
클라우스는 1950년대 이탈리아 중부 도시 오르비에토에서 소믈리에들과 와인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같은 와인을 마셨음에도 잔에 따라 와인에 대한 평가가 달랐습니다. 그는 잔의 모양과 크기가 와인의 맛에 영향을 준다고 결론 내립니다. 리델사는 잔의 디자인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것을 최초로 발견했다고 주장합니다.
현대식 와인잔의 원형, 소믈리에 시리즈 부르고뉴 그랑 크뤼_출처 : 리델
장식 없이 가볍고 긴 얇은 스템(stem)에 달걀 모양의 볼(bowl)이 올라간 유리잔은 혁명이었습니다 클라우스의 철학 ‘형식은 기능을 뒤따른다’를 반영했죠. 이 잔은 우아한 곡선미를 인정받아 같은 해 브뤼셀 세계박람회에서 금상을 수상합니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영구 소장품으로 전시되고 있습니다.
술맛 살리는 '2mm'
출처 : 리델
이후 수많은 비슷한 모양의 와인잔들이 나왔지만 왜 여전히 리델이 명품으로 꼽힐까요? 명 교수는 “리델은 와인잔을 개발할 때, 생산자들과 협업했다”며 “(그래서) 각 와인에 맞는 최고의 특성을 부각시키게 만들 수 있었다”라고 말합니다.
출처 : 테이스팅을 진행하는 게오르그 리델_출처 : 리델
그는 1989년 미국 와인의 전설로 불리는 로버트 몬다비와 만났습니다. 당시만 해도 와인 잔과 맛은 무관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고, 몬다비 역시 게오르그의 철학에 코웃음쳤습니다. 하지만 리델 잔으로 시음한 후 깜짝 놀란 그는 이후 어느 시음회에서든 리델 잔만을 고집했습니다. 리델이 미국 시장으로 나아가는 데 큰 영향을 미쳤죠.
이어 리델은 2004년 독일 최대 회사 크리스털 회사 나흐트만과 그 자회사 슈피겔라우를 인수하면서 글로벌 기업의 반열에 오릅니다. 리델은 현재 세계 100여 국에 와인잔을 수출합니다. 이제 와인 애호가들은 잔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진다는 명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죠.
계속 지펴라, 남아 있지 않게
코카-콜라 전용 리델 잔_출처 : 리델
11대손 막시밀리안 리델 회장은 2014년 코카콜라사와 협업해 전용 잔을 출시했습니다. 샴페인 잔 생산 기술을 활용해 잔 안을 미세하게 긁어놓은 덕분에 섬세한 거품을 유지합니다. 일반적인 플라스틱 잔에 크게 맺히는 콜라의 물방울이 없는 것입니다.
파토마토 시리즈_출처 : 리델
리델은 지금도 현대 와인잔의 ‘모태’에 머물지 않고 여전히 와인잔계의 ‘명품’으로 불립니다. 능숙한 것만 하지 않고 잘 할 수 있는 씨앗이 보인다면 도전하는 그들의 열정 덕분이 아닐까요.
인터비즈 조지윤 기자 georg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