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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적 상상 너머… ‘눈멂’을 다시 생각하다[책의 향기]

입력 | 2022-12-24 03:00:00

◇거기 눈을 심어라/M. 리오나 고댕 지음·오숙은 옮김/420쪽·2만 원·반비



고대 그리스의 장편 서사시 ‘오디세이아’에서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 앞에 등장한 ‘눈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 영국에서 활동한 스위스 출신 화가 요한 하인리히 퓌슬리(1741∼1825)가 그렸다. 반비 제공


한 번 보는 것이 백 번 듣는 것보다 낫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정보를 얻는 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을 시각이라 여겼다.

하지만 저자는 ‘시각이 사유를 좌우한다’는 굳건한 믿음에 균열을 내고자 한다. 본인이 ‘시각을 잃은’ 이였기 때문이다. 비시각장애인으로 태어났으나 10대 때 망막조직 위축을 일으키는 ‘망막색소변성증’에 걸렸고 차츰 시력을 잃었다. 현재 50대로 추정되는 저자는 희미하게 빛 정도만 분간할 수 있다.

저자는 “흔치 않은 경험 덕분에 기회가 생겼다”고 말한다. 대부분 장애인에게 사회가 요구해온 ‘장애를 딛고 일어난 성공 스토리’가 아닌 ‘눈멂’이란 것 자체에 집중해 문화사를 쓰기로 했다. 작가이자 공연예술가, 문학연구자인 그는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각 중심주의’ 관점에서 시각장애를 편향적으로 다뤄온 문화예술사를 샅샅이 톺아본다.

“보는 것이 곧 지식이요, 보지 못하는 것은 무지다.” 고대 그리스인의 이런 사고는 시각장애인을 천부적인 시적 재능과 예지력을 가진 이들로 여기게 했다. 보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무지라는 결핍을 채우기 위해 시각장애인은 다른 능력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한 것이다. ‘눈먼 음유시인’으로 알려진 호메로스를 보면 알 수 있다. 그조차 대표작 오디세이아에서 시각장애인을 초월적 재능을 가진 음유시인으로 그렸다. 요즘 영화, 드라마 등에서 자주 등장하는 ‘시각장애인 예언자’는 이 시기부터 시작된 것이다.

“질병은 은유가 아니다. 질병을 가장 정확하게 판단하려면, 그리고 가장 건강하게 아프려면 은유를 없애야 하며 은유적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저자는 수전 손태그(1933∼2004)가 1978년 에세이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쓴 글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시각장애인이 온전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선 지금이라도 은유를 멈추고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헬렌 켈러(1880∼1968)다. 일반적으로 켈러는 장애라는 역경을 이겨낸 아이콘으로 여겨지지만, 사실 이는 그의 생을 반도 제대로 못 본 것이다.

켈러는 20대에 출간한 자서전으로 성공을 거뒀지만, 결국 40대 때부터는 생계를 걱정하며 평생의 스승 앤 설리번과 버라이어티쇼 공연을 전전해야 했다. 또 켈러의 강렬한 열애나 적극적인 정치활동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작위적으로 만든 ‘시련을 극복한 성스러운 시각장애인’이란 이미지가 덧칠해졌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고 싶은 건 하나다. “시각장애인이라고 해서 우리가 인간이라는 사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단지 눈이 보이지 않을 뿐, 시각장애인 역시 각자의 개성이나 존재 방식을 지닌 독립된 인격체라는 사실은 마찬가지다. 세상이 만들어놓은 틀로만 타인을 바라보는 건 또 다른 차별이자 억압일지도 모른다.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