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대로 선생’ 이홍우 화백 별세 본보 시사만화 27년 동안 연재 대중에 解憂所-정치인에 촌철살인 ‘경포대’-‘삼팔선’ 등 유행어 화제
동아일보에 27년 동안 연재했던 네 컷 시사만화 ‘나대로 선생’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시사만화가 이홍우 화백(사진)이 23일 별세했다. 향년 73세.
고인은 올해 9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확진된 뒤 합병증으로 장기간 입원해 치료를 받아 왔다. 유족은 23일 “‘나는 죽을 때까지 나대로였다’, ‘후회 없이 멋지게 살았다’는 말씀을 남겼다”고 밝혔다.
부산 출신인 고인은 어렸을 때부터 시사만화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중학교 2학년 때 무작정 상경해 당시 동아일보에 ‘고바우 영감’을 연재하던 김성환 화백(1932∼2019)의 전시회를 찾아갔던 일은 유명하다. 고교 때부터 학생 잡지에 고정적으로 만화를 그렸으며, 1967년 서라벌예술대 2학년 때 대전 중도일보에 ‘두루미’를 연재하기도 했다.
1991년 11월 29일자에 게재된 ‘나대로 선생’.
하지만 검열을 뚫고 할 말은 했다. 1986년 11월 건국대 시위 때 학생 1290명이 구속되자 그는 수북이 쌓인 낙엽을 치우고 돌아오니 다시 낙엽이 쌓여 있는 내용의 만화를 그렸다. 시위대를 잡아넣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라고 강조한 것. 고인은 “매일 권력에 맞서 작업하며 단두대에 올라가는 심정이었다”고 털어놓았다.
협박과 항의를 받는 건 다반사였다. 1997년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아들의 병역 문제를 다루며 “대쪽 집안이라 속이 비어 몸무게가 안 나간다”고 그려 항의를 받았다. 읍소도 적지 않았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는 1992년 통일국민당 대선 후보 시절 얼굴에 있는 검버섯을 빼 달라고 요청했다.
세상에 대한 그의 눈은 날카롭고 정확해 풍자가 현실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16대 국회에서 자민련이 17석으로 교섭단체를 못 만들자 “3명 꿔오면 되지”라고 그렸는데, 그해 말 실제 국민회의 의원 3명이 자민련으로 이적했다.
그는 숱한 유행어도 만들었다. 2005년 참여정부의 경제 실정(失政)을 지적한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를 비롯해 조기 퇴직을 풍자한 ‘삼팔선’(38세도 선선히 사표를 받아준다)은 큰 화제를 모으며 유행어가 됐다.
2011년부터 2년간 상명대 문화예술대학원 만화영상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한국시사만화가회 초대 회장을 지냈다. 2015년 상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석좌교수로 임명됐다. 제1회 고바우 만화상, 제16회 대한언론인상 공로상을 수상했다. 최근까지도 한 매체에서 시사만화 ‘도두물 선생’을 그려온 고인은 코로나19 확진 뒤에도 마감을 지킬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문득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날은 1년에 며칠 안 됩니다. 정말 미치지 않았으면 못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시사만화가 미치도록 좋습니다.”(2007년 11월 5일 동아일보 인터뷰)
유족으로는 부인 이경란 씨와 아들 상민 시공사 만화팀 편집자, 딸 지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강사가 있다. 빈소는 서울 고려대 안암병원, 발인은 26일 오전 8시. 070-7816-0349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