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선의 자정 기능 사라진 與野 확증 편향으로 증오 정치 커져
길진균 정치부장
“요즘 초선들은 꼭 직장인 같다.”
최근 만난 한 원로 정치인의 탄식이다. 그는 “초선과 다선의 말과 역할이 뒤바뀐 지금 정당은 건강할 수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당 주류 또는 지도부에 대한 심기 경호와 공천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여야 초선 의원들의 행태를 생계에 목매어 승진만 바라보는 직장인에 비유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초선들은 기득권 정치에 맞서는 희망이자 기대주였다. 초선 그룹은 각종 개혁 이슈를 주도하고 당내 쓴소리를 불사하면서 새 정치의 아이콘으로 주목받았다.
21대 국회 들어 국민의힘 전체 의원 115명 중 절반이 넘는 63명(55%)이 초선으로 채워졌다. ‘초선이 최대 계파’로 등극하면서 초선들이 새로운 보수 정치를 이끌 아이콘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지금 그들에게 기대했던 존재감은 찾기 어렵다.
오히려 상당수 초선들은 주류 세력의 호위대를 자처하고 있다. 지난달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국회 운영위 국정감사장에서 김은혜 홍보수석과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을 퇴장시킨 이후 주 원내대표 면전에서 불만을 드러낸 것도 초선들이다. 두 수석은 이태원 참사로 158명의 국민과 외국인이 희생된 상황을 논의하는 상황에서 ‘웃기고 있네’라는 농담 섞인 필담을 주고받았다. 주 원내대표는 두 수석의 동의를 받아 이들을 퇴장시켰다. 당연한 조치였다. 그렇지만 충성 경쟁에 몰입한 일부 초선들은 이를 문제 삼았다.
대통령과 대통령실을 사실상 받들고 사는 여당 초선들 못지않게 야당 초선들은 극성 지지층과 당 지도부 눈치만 본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부패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지만 당 지도부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초선은 없다. 중진들이 간혹 쓴소리를 낼 뿐이다. 민주당이 늘 이랬던 것은 아니다. ‘천신정’(천정배 신기남 정동영)은 물론이고 김민석 전 의원 등도 지금은 기득권이 됐지만 초선 땐 남다른 개혁성과 참신함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초선들은 말한다. “정치는 현실이다” “눈 밖에 나면 공천을 받을 수 없다” “쓴소리는 3선쯤 돼서 하면 된다” 등이다. 이해는 간다. 그러나 지독한 이기주의다. 새 정치인을 선택한 유권자의 기대와 달리 공천권자, 극성 지지층의 의중만 살피는 초선들의 기회주의적 행태는 정치에 대한 불신과 혐오를 더욱 키우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내부에서 자정 기능을 담당했던 초선의 역할이 사라진 각 정당은 대화와 협치는커녕 확증 편향으로 상대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키워 간다. 양 진영 지지층의 충돌도 격화된다.
길진균 정치부장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