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No, that‘s not sarcasm. I don’t use sarcasm. It‘s irritation.(비아냥 아니에요. 나는 비아냥거리지 않아요. 그건 짜증이에요.)”
영화 ‘어카운턴트’(2016년)에 나오는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의 대사입니다. 탈출 계획을 묻는 질문에 남주인공이 무뚝뚝하게 답하자 여주인공이 “그거 ‘Sarcasm’이냐”며 거칠게 항의합니다. 자폐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남주인공의 화법을 이해 못 해 벌어진 상황이죠.
불성실한 답변 태도에 ‘Sarcasm’이라며 화를 내는 장면을 보니 빈정대거나 비아냥거리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생활에선 이런 말투가 너무 많으니 한국영화였다면 그러려니 했을 텐데요.
영화 스틸컷
▽“모멸감을 주기 딱 좋은 한국어의 특성이 자유로운 소통을 막는다”
- 소설가 장강명의 경향신문 2017년 2월10일자 인터뷰
권력자를 돌려서 비꼬는 말투나 행위, 예술을 ‘풍자(諷刺)’라고 합니다. 부드럽게 찌른다는 뜻인데요, 강자에 대항하는 약자의 무기입니다. 풍자는 재미있고 통쾌합니다. 반대로 강자가 약자를 풍자할 수는 없죠. 강자에게도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요? 강자가 약자를 비아냥대면 우리는 그것을 ‘약자혐오’나 ‘협박’, 또는 ‘갑질’이라고 부릅니다.
한국영화나 드라마에는 빈정대는 대사들이 참 많이 나옵니다. 정겹고 친한 사이를 표현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예의 없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친한 사람들끼리는 서로가 서로의 약점을 아무렇지도 않게 놀려대며 ‘팩폭’ 직언을 하는데, 이는 동등한 관계이니 가능한 말투죠. 사회적인 갑을 관계, 수직 관계에서 이러면 곤란하죠. 빈정거리는 사람은 바로 꼰대가 되고요.
어쨌든 소설가 장강명이 지적한대로 한국어의 특성 중 하나는 모멸감을 주기 쉽다는 것입니다. 빈정대고 비아냥거리며 비꼬기 좋은 언어라는 것이지요. 모멸감으로 연결됩니다.
2021년 6월
- 김찬호 성공회대 교수의 책 ‘모멸감(굴욕과 존중의 감정사회학)’(2014년) 중에서
▽“나는 ‘모든 사람에게 존댓말 쓰기’ 운동을 한다. 사람들 간에 대등한 대화가 이뤄지지 않고, 상호존중 문화가 정착되지 않는 데는 존대-반말 체계의 탓이 크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새로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게는 존댓말을 쓰고 있다.”
소설가 장강명은 위 인터뷰에서 존댓말을 제안합니다. 갑을관계, 지위고하, 나이서열 관계없이 존댓말을 쓰는 것이지요. 이미 대다수 회사들의 단체 업무 톡방에선 거의 모두 존댓말을 씁니다. 처음엔 어색하고 불편할 수 있지만 서로가 서로를 존중해주니 불쾌하지는 않습니다. 농담 삼아 “어차피 우리는 아무도 존중해 주지 않으니 우리끼리라도 서로 존중해주자”라고 말하기도 하고요. 비꼬지 않는 유머도 좋습니다. 비꼬고 싶어서 정 입이 근질거린다면 스스로를 비꼬면 됩니다. 이른바 자학개그인데 잘만 하면 비웃음 본능을 해소하면서도 겸손하다는 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반말과 비아냥에는 상대방을 깎아내려 비교우위를 확보하려는 속내도 담겨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자신만을 깎아내릴 뿐입니다.
2022년 4월
2020년 1월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