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우주 호모 스페이스쿠스 시대]〈2〉우주 시대 첨단 의학 연구
국내 제약사 보령은 6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스페이스 헬스케어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케어 인 스페이스(CIS)’ 데모데이 행사를 가졌다. 보령 제공
20일 찾은 인천 인하대병원의 의과학연구소. 연구소 한편에는 가운데 축을 중심으로 양쪽에 실험 대상을 넣어 빠르게 회전시킬 수 있는 대형 실험장비가 마련돼 있었다. 지구 중력 15배 이상의 고중력을 구현해 수주 이상의 신체 변화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중력 부하 실험장치’다. 이 연구소는 민간에서 유일하게 우주항공의학 연구시설과 장비 등 연구 기반을 갖춘 우주항공 특화 연구소다. 연구소 관계자는 “동물의 뇌를 모니터링해 중력 변화 이후 뇌기능 변화나 신경전달물질의 감소 여부를 측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소에서는 의사도 병원도 없는 우주 공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신체적 변화를 시뮬레이션하고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지구와 우주 공간의 가장 큰 차이점은 높은 밀도의 우주방사선 노출과 중력의 변화다. 인위적으로 회전이나 높은 중력을 부하하는 방법으로 우주멀미, 면역력 저하, 인지능력 저하 등 우주에서 생길 수 있는 다양한 신체적 변화를 연구 중이다. 김규성 의과학연구소장은 “우주 탐사가 장기 체류 체제로 변화하면서 우주 환경에서의 고립과 정신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며 “뉴스페이스 시대가 다가오면서 향후 우주의학 관련 분야를 먹거리로 삼으려는 기업들도 다수 나타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간 우주 개척이 본격화되면서 우주에서 건강하게 머무르기 위한 투자와 연구가 본격화되고 있다. 특히 지구에 비해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우주의 무중력 환경은 제약·바이오 분야의 연구 성과와 기술 개발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무중력 공간에서는 약물을 만들 때 생성되는 단백질 결정이 바닥으로 가라앉지 않아 지구에서보다 균질하고 고순도의 약물을 획득할 수 있다. 글로벌 제약사 ‘머크’는 2017년부터 자사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를 우주정거장에서 제조하는 실험을 진행한 뒤 2019년 고순도의 약물 제조 관련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스페이스 린텍은 내년 상반기(1∼6월)부터 이 실험장에서 항암 면역세포치료제 실험을 포함한 각종 의생명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스페이스 린텍을 설립한 윤학순 미국 노퍽주립대 교수는 “우주 미세중력 환경이 세포나 생체에 다양한 영향을 끼치고 있고, 지상에서 구현되기 어려운 제약기술들이 우주정거장에서 기술 개발로 이뤄지고 있다”며 “현재 국내 우주발사체 기업 페리지 에어로스페이스와 함께 우주의학 실험장치를 저궤도로 이송하기 위한 공동 연구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국내 제약사도 우주 의학을 활성화하기 위한 투자를 진행 중이다. 보령은 올해 우주 헬스케어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케어 인 스페이스(CIS)’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6일 CIS 프로그램에 선정된 글로벌 스타트업 6곳은 지구와는 다른 우주 환경에서 인간이 맞닥뜨릴 수 있는 건강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했다. 보령은 국제우주정거장(ISS)을 대체할 세계 최초의 상업용 우주 정거장 ‘액시엄 스테이션’을 건설 중인 ‘액시엄 스페이스’에 올해 약 6000만 달러(약 770억 원)를 투자하기도 했다.
보령이 투자한 스타트업들은 인공지능(AI), 확장현실(XR) 등 정보기술(IT)을 활용해 고립된 환경에서 우주비행사의 건강을 모니터링하고 관리할 수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미국의 우주 헬스케어 스타트업 ‘엑스토리’는 XR를 이용해 우주비행사의 정신 건강을 관리하는 플랫폼을 준비하고 있다. 이 플랫폼에서는 우주비행사의 가족을 3차원(3D) 가상현실로 구현하고, 우주비행사가 우주 공간에서도 가족들과 대화하거나 상호작용하며 외로움과 스트레스를 관리할 수 있다. 로저 디아스 엑스토리 공동창업자는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신체 건강과 마찬가지로 정신 건강 문제는 우주 여행자에게 주요 위험으로 부각되고 있다”며 “AI로 구동되는 가상 코치와 대화형 가상현실을 통해 우주 비행사는 화성에서도 정신 건강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