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여성 등 사회적 약자가 다수 광주 고려인마을에서 정착 도와 7억8000만 원 모아 항공권 지원 입국 후 쉼터 통해 일자리 소개도
광주 광산구 월곡동 등을 중심으로 2000년대 초반부터 형성된 고려인마을에는 현재 고려인 7500여 명이 살고 있다. 25일 성탄절을 맞아 고려인들이 서로 선물을 나누며 인사를 건네고 있다. 광주 고려인마을 제공
광주 고려인마을의 도움을 받아 전쟁의 화마를 피해 한국에 온 우크라이나 고려인 피란민 10명 중 3명은 고국에서 꿈을 키우는 아동·청소년인 것으로 조사됐다.
26일 광주 고려인마을에 따르면 전날까지 루마니아, 폴란드, 몰도바, 독일 등에서 출국해 한국으로 온 우크라이나 고려인 피란민은 858명으로 집계됐다. 자신의 나이를 밝힌 843명 중 10세 이하 아동은 118명(14%), 청소년은 174명(20.6%)으로 조사됐다. 이어 20·30대 청년 251명(29.8%), 40·50대 중년 194명(23%), 60∼90대 노인 106명(12.6%) 순이었다. 15명은 자신의 나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특히 응답자 가운데 292명(35%)은 아동·청소년, 531명(63%)은 여성으로 사회적 약자가 주로 고국행을 선택한 것으로 분석됐다. 피란민 중 가장 어린 아동은 6개월 된 티코니브 미하일로 군이었고, 가장 고령은 김로자 할머니(90)였다.
현재 아동·청소년 50여 명은 광주 광산구 하남중앙·월곡·대반·영천초등학교와 월곡·하남·산정·송정중학교 등 8개 학교를 다니고 있다. 이들은 보조교사인 고려인 통역사의 도움을 받으며 한국인 교사에게 수업을 듣고 있고, 한국어도 배우고 있다.
하남중앙초교의 경우 전체 학생 320명 중 170명이 다문화 가정 자녀라 한국어 학급도 운영한다. 우크라이나 고려인 피란민 자녀 10여 명도 최근 입학했다.
정행기 하남중앙초교 교감은 “피란민 학생들이 처음 입학할 때 전쟁 상처로 불안해하는 표정이 역력했지만 심리상담 등을 받고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어가 어설픈 학생들을 가르치기 힘들지만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한다면 큰 보람을 느낄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머지 중고교생은 다문화 대안학교인 광주 새날학교에서 배우고 있다. 이천영 새날학교 교장은 “우크라이나 고려인 피란민 자녀들이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각계의 관심과 후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운동에 첫 기부를 한 사람은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 카페 대표 전올가 씨(37·여)다. 전 씨 등은 3월 10일 항공권 구입에 보태라고 1000만 원을 처음으로 후원했다. 전 씨는 “작은 씨앗이 기부 흐름이 돼 절박한 동포들을 도울 수 있어 기뻤다”고 말했다.
후원자들 중 10여 명은 익명으로 기부했다. 이들은 수백만 원에서 1000만 원까지 후원했지만 신분 공개를 끝까지 고사했다. 광주 지역사회도 항공권 지원에 이어 생활비와 침구류, 쌀, 주방용품 등 지원 물품을 배분하고 각 가정에 원룸 임대 보증금 200만 원과 두 달 치 방값을 지원했다. 고려인마을도 피란민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교육, 사회문화 교육 등 긴급 돌봄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가족 6명과 함께 광주에 온 김세르게이 씨(42)는 “항공권과 쉼터 등 필요한 물품을 지원해 준 따뜻한 동포애에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피란민들은 한국어를 구사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고려인 쉼터를 통해 일자리를 소개받고 있다. 피란민 유입으로 쉼터는 포화상태에 도달해 쉼터 확충이 절실하다. 특히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한국행을 애타게 기다리는 피란민 200명에 대한 추가 후원도 필요한 상황이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