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열 사회부 차장
지난주 휴가 때 고향에 가기 위해 KTX역에 내렸더니 지방자치단체가 설치한 플래카드 하나가 눈에 띄었다.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는 고향사랑기부제에 적극 동참해 달라고 홍보하는 내용이었다. 같은 플래카드는 도심 곳곳에서도 펄럭이고 있었다.
고향사랑기부제란 개인이 지자체에 일정액을 기부하면 세액공제 혜택과 답례품을 주는 제도다. 기부금 10만 원까지는 전액, 초과분은 16.5%를 정부가 세액공제로 돌려준다. 기부자는 지자체가 정한 답례품 중 마음에 드는 품목을 골라 받을 수 있다.
정부가 이 제도를 도입한 배경엔 ‘지방 소멸’이란 국가적 위기가 있다. 수도권과 지방의 발전 격차에 따라 인구 유출이 가속화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출산율(지난해 0.81명)이 이어지면서 상당수 지자체는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10월 처음으로 인구감소지역 89곳을 지정하고 지방소멸대응기금 지원과 고향사랑기부제 등 다양한 지원책을 내놓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 지자체들은 답례품 선정에 치열한 경쟁을 펼친다. 지역을 대표하는 특산품이나 이색 품목을 선정해야 기부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어서다. 한국의 지자체도 답례품 선정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경북 영천시 등은 ‘조상 묘 벌초 대행 이용권’을 선정했고, 충남도는 부모의 병원 통원 등을 돕는 ‘대리효도 상품권’을 내놨다. 전남 영암군은 ‘천하장사와의 식사권’, 나주시는 지정문화재 숙박권을 제공하기로 했다.
고향사랑기부제의 성패를 가를 핵심 요인은 인지도다. 하지만 이 제도가 뭔지 구체적으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농촌경제연구원이 올 8월 3000명을 조사한 결과 9.8%만이 ‘들어본 적이 있으며 어느 정도 내용은 알고 있다’고 답했다. 지자체들 사이에선 “정부가 대국민 홍보에 소극적”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정부는 지자체의 경쟁이 과열되거나 선거에 이용될 가능성을 너무 우려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고향사랑기부제는 법인과 단체는 참여할 수 없으며 본인이 거주하는 지자체에도 기부할 수 없다. 지방선거 등에 악용될 소지를 막기 위한 조치다. 기부액은 연간 500만 원을 넘어선 안 되고, 답례품은 기부액의 30% 이내만 가능하다. 백화점 상품권, 현금, 귀금속 등은 답례품으로 선정할 수 없다. 정부가 우려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한 규제가 이미 법제화돼 있는 것이다. 정부가 규제만 고집하며 소극적 태도를 보이면 지방 소멸은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고향사랑기부제를 활성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홍보에도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다.
유성열 사회부 차장 r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