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중단 4년 7개월 만에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9월부터 재공개된 백남준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다다익선’. 총 1003대에 달하는 노후된 모니터 가운데 737대는 수리를, 266대는 교체하는 대대적인 복원 공사를 거쳤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2022년 9월 15일. 국립현대미술관 역사에서, 아니 세계 비디오 아트의 역사에서, 기록적인 날이다. 과천관의 상징과 같았던 백남준의 대표작 ‘다다익선’이 재가동되었기 때문이다. 4년 이상을 암흑 속에 있다가 어렵게 불을 켠 날, 이 어찌 감동적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2018년 2월 ‘다다익선’은 화재의 위험 때문에 작동 금지를 당했다. 재가동을 위한 논의만 무성했다. 그러는 사이에 1년이 훌쩍 흘러갔다. 내가 미술관에 취임하니 크게 3가지의 견해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원형 보존, 신기술 교체, 철거. 사실 이 같은 3가지 주장은 다 가능한 일이었다. 원형 보존은 ‘다다익선’에서 사용했던 브라운관(CRT) 모니터의 단종이라는 한계와 만나고 있었다. TV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해 ‘다다익선’ 당시의 모니터를 더 이상 생산하지 않게 했다. 그래서 나온 대안은 신기술을 도입해 항구적 체제로 바꾸자는 것이었다.
백남준 역시 기계는 수명이 있는 것이니 새로운 기술로 대체해도 좋다는 신축성 있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다. 원형 보존이고 신기술이고 따질 것이 아니라 아예 철거하자는 주장도 있었다. 사실 당시만 해도 ‘다다익선’은 미술관 소장 작품이 아니었다. 하나의 시설물, 바로 미술관 시설물에 불과했다. 시설물은 용도를 다하면 폐기하게 마련이다. 게다가 미술관의 중요 공간을 한 작가로 하여금 영구 독점하게 하는 방식은 문제라는 주장도 없지 않았다.
복원 작업 중인 ‘다다익선’의 모습. 한때 철거론까지 대두됐지만 모습을 원형 그대로 교체, 수리해 보존하게 됐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다다익선’은 총 4개의 채널로 이루어졌다. 분할 화면 9개의 모니터가 한 개의 채널로 이루어지든가, 3개의 채널이 대각선으로 같은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한마디로 현재의 ‘다다익선’은 항상 4개의 채널이 1003대의 모니터를 명멸시키고 있다. 대개 한 사이클을 도는 데 30분가량 소요된다. 반짝반짝. 백남준의 비디오 작품은 무수한 이미지의 명멸로 특징을 이루고 있다. 화면 전환이 너무 빨라 이미지의 숫자를 세기 어려울 것이다.
백남준은 초기 비디오 아트의 대중적 관심을 이끌기 위해 이미지의 명멸이라는 전략을 도입했다. 유목민의 생리는 항상 새로운 풍광과 마주하는 것이다. 반짝반짝. ‘다다익선’은 오늘도 과천관 로비에서 명멸하고 있다. 잠든 세상을 향해 눈 떠 있으라고 죽비를 드는 것 같다.
올해는 백남준 탄생 90주년의 해였다. 마침 ‘다다익선’ 재가동의 해여서 국립현대미술관은 ‘백남준 축제’를 마련했다. ‘다다익선: 즐거운 협연’이라는 제목의 ‘다다익선’ 관련 아카이브 전시를 비롯해 백남준의 대표작급을 대거 동원한 ‘백남준 효과’ 전시, 그리고 국제 학술대회도 열었다. 정말 백남준 축제의 과천관이었다. ‘다다익선’ 보존 처리 과정은 두툼한 백서 발행으로 국제 무대에 보고할 예정이다.
세계적인 미술 잡지 ‘아트포럼’은 ‘2022년의 베스트’라는 특집에 백남준의 ‘다다익선’ 재가동을 선정했다. 본문에 자세히 소개했을 뿐 아니라 표지화(表紙(화,획))로도 선정해 올해가 명실 공히 ‘다다익선’의 해였음을 추인했다. 경하스러운 일이지 아닐 수 없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