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돈줄 얼어붙은 전기차 배터리 업계, 美공장 투자 등 보류

입력 | 2022-12-27 03:00:00

[성장산업 먹구름]
경기침체에 외부자금 유치 차질
반도체 이어 신성장산업 먹구름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사업 자회사 SK온이 미국 조지아주 커머스시에 건설 중인 배터리 2공장. SK온 제공


자동차 업계의 미래 시장인 전기차 산업이 글로벌 경기 침체와 자금 경색으로 주춤하고 있다. 올 초까지 경쟁적으로 투자를 이어온 국내 배터리 업계도 자금 조달에 차질을 빚으며 속도 조절에 들어갔다. 반도체에 이어 주력 신성장 사업으로 꼽히는 전기차 배터리 분야도 경기 침체와 자금 경색에 발목이 잡히는 모양새다.

경영 컨설팅업체 KPMG가 세계 자동차산업 경영진 91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22일 공개한 ‘KPMG글로벌 자동차산업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 전기차는 전체 자동차 판매의 최대 40%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지난해 같은 조사에서 점유율 최대 70%를 전망한 것에서 크게 낮아졌다. 보고서는 “자동차 업계가 경기 침체, 높은 에너지 가격에 직면하면서 탄소 감축 실천을 위한 전기차 관련 투자를 미뤄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고 짚었다.

국내 전기차 배터리 기업들의 투자 속도도 늦춰질 것으로 보인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앞서 21일 SK온의 2조8000억 원 유상증자는 외부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은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2조8000억 원 중 2조 원은 SK이노베이션의 출자로, 8000억 원은 한국투자PE 등 외부 유치 자금으로 조성된다. 결국 외부 자금 유치가 8000억 원에 그친 것이다. 4조 원 유치를 목표로 했던 올해 초 목표치에도 크게 못 미쳤다.

LG에너지솔루션도 1조7000억 원 규모의 미국 애리조나 단독공장 투자 결정이 당초 예상보다 늦어질 것으로 보인다. 내부에선 당초 연내 투자 규모 결정이 목표였으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환율 급등, 소비 침체 등 여러 변수가 겹치며 보류된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SDI도 공격적인 합작 투자에 나서기보다는 기술 경쟁력과 품질 강화에 우선 힘쓴다는 기조다.




배터리 업계까지 덮친 긴축 한파… SK온, 외부자금 조달 애로


돈줄 얼어붙은 배터리 업계
환율-원자재값 상승 겹치며 시름
전기차 성장 전망 나빠진것도 악재
해외업체도 잇따라 “공장신축 철회”



올 초까지 확대 일로를 달리던 전기차와 배터리 업계에 직격타가 된 것은 무엇보다 급격한 자금 시장 냉각이다.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6월 이후 전례 없는 긴축에 나서면서 신산업에 대한 투자 금융 시장도 급속히 얼어붙었다.

배터리 산업은 조 단위의 대규모 초기 투자비용이 드는 만큼 당장의 수익은 작더라도 중장기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외부 자금 유치가 중요하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은 이미 미국 현지 완성차 업계와의 합작 공장을 건설하고 있거나 계획하고 있다.

SK온의 경우 미국 자동차 업체 포드와의 미국 켄터키·테네시주 합작 공장, 튀르키예 합작 공장을 비롯해 이달 초 발표한 현대자동차와의 조지아주 합작 공장까지 신규 생산라인 투자를 위해 최소 수조 원대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 시장 긴축은 상당한 리스크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환율 급등과 원자재가 상승도 업계에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초반 투자 계약 시점 대비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고 원자재와 장비 가격이 치솟았다. 배터리 업계 한 고위 임원은 “환율, 원자재가 상승으로 완성차 업계와 계약을 다시 손보거나 비용을 분담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말했다.

해외 배터리 업체들도 자금난에 신음하고 있다. 폭스바겐그룹 파트너인 스웨덴 배터리 업체 노스볼트는 독일에 생산라인 추가 계획을 발표했으나 자금 부담이 커지며 착공이 지연되고 있다. 영국 배터리 업체 브리티시볼트도 정부의 펀드 자금 지원을 요청했으나 여의치 않자 지난달 캐나다 배터리 공장 설립 계획을 철회했다.

전기차 성장성 전망이 어두워지는 것도 악재다. 각국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 등으로 판매량 자체는 늘어나겠지만, 글로벌 경기 침체 등 예상치 못한 변수들로 인해 성장률이 낮아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LG에너지솔루션이 물량이 확보된 제너럴모터스(GM)와의 합작공장은 예정대로 진행시키는 반면 애리조나 단독 공장에 대해서는 쉽게 결론을 내지 못하는 배경이다.

테슬라는 최근 미국서 ‘모델3’ ‘모델Y’ 등의 전기차에 대해 7500달러(약 960만 원) 할인 판매를 진행하기로 했다. 테슬라는 그동안 할인을 거의 하지 않는 판매 전략을 취해 왔다. 하지만 내년 경기 침체로 인해 전기차 수요 감소가 예상되자 전격적으로 할인 판매를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신생 업체들의 어려움도 커지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한때 포드보다 시가총액이 높았던 전기차 제조사 리비안은 올해에만 주가가 약 70% 떨어졌다. 자금난으로 인해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와 유럽에서 전기차 생산을 하기로 한 협력 사업을 중단하기도 했다. 영국 경량 상용 전기차 제조사 어라이벌(Arrival)도 1년 내 현금이 고갈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고급 전기차를 생산하려는 루시드 역시 판매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기차는 내연기관 차량보다 가격이 높은 만큼 내년 경기 침체가 본격화되면 소비자들의 구매 여력이 하락해 판매량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25일(현지 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럽의 경우 전기 요금 상승으로 전기차 소유를 위한 비용도 높아지고 있다”고 짚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전기를 생산하기 위한 에너지 비용이 여전히 고공 행진을 벌이고 있어서다.

경기 침체로 전기차를 위한 인프라 구축 속도가 늦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자동차 업계 고위 관계자는 “최근 미국, 유럽, 일본 등을 돌아본 결과 전기차 인프라 구축 속도가 당초 예상보다 더딘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보급 가속을 위해 구축해온 충전 설비의 가격이 상승하면서 비용 부담이 커졌고, 각국 정부도 전기차 관련 인프라 투자 속도를 조절하고 있기 때문이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이건혁 기자 gun@donga.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