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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의 한파, 원인이 같다고? [이원주의 날飛]

입력 | 2022-12-27 13:52:00


크리스마스가 끼어 있던 지난 주말 안녕하셨는지요. 즐겁고 행복해야 할 크리스마스가 너무하다 싶을 정도의 강추위와 폭설로 엉망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나라뿐만이 아닙니다. 미국에서도 ‘폭탄 눈폭풍’이 불어닥쳐 역시 수십 명 인명피해가 났습니다.
 

혹한+폭설이 겹쳤던 크리스마스 주말 우리나라(왼쪽)와 미국의 위성사진. 기상청, 미국해양대기청(NOAA)

추워도 너무 추운 날씨, 와도 너무 많이 오는 눈. 우리나라와 일본, 미국의 이번 혹한은 모두 같은 곳에서 왔습니다. 일본은 그렇다 치고, 왜 태평양 건너의 미국과 우리나라의 추위 원인이 같은지, 그러면 다른 점은 무언지. 이번 ‘날飛’에서 알아보겠습니다.
모스크바보다 추운 우리나라 
겨울철 혹한이 찾아오면 농반진반으로 하는 얘기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시베리아보다 춥다.” 항상은 아니지만 실제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멀리 안 가고, 우리나라 추위가 정점이었던 23일 전후 모스크바의 기온은 0도 근처를 맴돌았습니다. 같은 날 우리나라는 철원 –17도, 대관령 –20도, 서울 –14도, 부산도 –6도였네요.
 

크리스마스 이틀 전이었던 23일(각 도시 현지시각 기준) 서울과 모스크바의 최저기온 비교. 위도가 훨씬 높은 모스크바가 압도적으로 기온이 높습니다. 구글어스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이유는 독자 여러분께서 겨울철만 되면 지긋지긋하게 뉴스에서 접하시는 ‘제트기류’와 ‘북극진동’ 때문입니다. 복잡한 내용은 다 덜어내겠습니다. 제트기류는 겨울철 북극 주변을 빠른 속도로 돌면서 북극의 찬 공기를 가둬두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이 제트기류는 북극 주변을 깔끔한 원 모양으로 돌지 않고 구불구불하게 돕니다.

북극 주변을 흐르는 제트기류. 붉은색 구불구불한 선이 제트기류이고, 그 안에는 북극 찬 공기가 가둬져 있습니다. earth.nullschool.net

제트기류가 구불구불해지는 원인은 다름 아닌 지구의 지형 때문입니다. 제트기류의 중심 북극해 아래, 러시아 서부와 중부의 경계 어디쯤에 ‘우랄산맥’이라는 산맥이 있습니다. 최고봉(1894m)이 우리나라 한라산보다 낮지만 제트기류를 뒤틀기엔 충분한 높이입니다. 이 산을 타고 넘으면서 제트기류는 북쪽으로 크게 한 번 굽이치고, 계속해서 물결 모양을 그리면서 우리나라까지 옵니다.

우랄산맥 위치. 북쪽으로는 북극해와 맞닿아 있고 남쪽으로는 카자흐스탄까지 뻗어 있습니다. 구글어스

이 물결 모양은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여서, 폭이 좁아졌다 넓어졌다, 깊이가 깊어졌다 얕아졌다를 반복합니다. 독자 여러분들께서 겨울철만 되면 뉴스에서 지긋지긋하게 보고 들으셨을 ‘북극진동’이 바로 이 움직임을 말합니다. 그리고 저 물결모양 고리의 경계 안쪽으로 우리나라가 들어가면 우리나라에 강추위가 몰아칩니다.
 

제트기류의 북극진동 모식도. 제트기류가 우리나라에 걸치면 한파가, 우리나라를 북쪽으로 피해가면 온화한 겨울 날씨가 나타납니다. 구글지도

추워도 너무 추웠던 크리스마스 주말
최근 우리나라에 강추위가 계속됐던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이 제트기류 모양이 열흘 가까이 바뀌지 않고 정체돼 있었기 때문에 따뜻한 공기가 치고 들어올 틈이 없었던 겁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직전 금요일인 23일 올해 가장 추운 날씨와 강한 바람이 불어왔던 데는 원인 하나가 더 있습니다.
 

올해 들어 가장 추웠던 12월 23일 한강이 올해 처음으로 얼어붙은 모습.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몽골 가운데쯤 만들어진 거대한 고기압이 우리나라 주변으로 북극 찬 공기를 거의 수직으로 내리꽂았습니다. 이렇게 내리꽂힌 찬바람이 제트기류와 만나 반시계방향으로 빠르게 회전하면서 폭풍 같은 바람까지 불었던 겁니다. 이날 동해상에 만들어진 저기압 중심은 아침 9시 기준 977헥토파스칼을 기록했는데, 약한 태풍 수준입니다.
 

12월 23일 오전 9시 우리나라 상공 일기도. 기상청

이날 우리나라 5.5km 상공에는 영하 30도 찬 공기가 한반도 전역을 거의 다 뒤덮었습니다. 통상 영하 30도 공기가 중부지방까지만 내려와도 전국에 한파가 몰아칩니다. 그런데 이날은 이런 공기가 강한 북풍을 타고 남부지방까지 갔습니다. 크리스마스 주말 ‘모스크바보다 추운 대한민국’은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미국도 마찬가지
같은 기간 미국을 강타한 역대급 ‘폭탄 폭풍(Bomb Cyclone)’도 원인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제트기류가 북미 대륙 서부 쪽부터 크게 출렁여 미국 전역을 거의 다 덮으면서 찬 북극 공기를 미국에 쏟아낸 것이 시작입니다.
 

12월 24일(현지시각) 영하 16도 강한 한파가 몰아닥친 미국 뉴욕주 버팔로시 모습. AP 뉴시스

다만 미국을 강타한 이번 ‘폭탄 폭풍’은 그 강도가 매우 빠른 시간에 급격하게 강해진 점이 우리나라와 다릅니다. 12시간 만에 약 1000헥토파스칼 정도였던 ‘그저 그런 저기압’이 965헥토파스칼의 ‘태풍급’ 저기압으로 발달했습니다. 지난 9월 초 우리나라 남부지방을 통과했던 역대급 태풍 ‘힌남노’가 부산 지방을 통과할 때 중심기압이 955헥토파스칼 정도였습니다.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주말 미국에서는 갑작스럽게 태풍이 내륙 한가운데서 발생한 셈입니다.
 

23일 미국 상공 일기도. 기상청

이렇게 급격하게 태풍급 저기압이 발달한 이유도 제트기류와 연관이 있습니다. 북쪽 상공에서 차고 강한 바람이 급격하게 내려와 상대적으로 덜 차가운 저기압과 만날 경우 반시계 방향 소용돌이가 급격하게 강해지면서 저기압이 폭발적으로 강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말 미국이 바로 이런 상황인 것으로 분석됩니다.
이렇게 추운데 눈은 왜? 
추위도 추위지만 우리나라와 미국 모두 눈 때문에 엄청난 고생을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중남부 서해안 지방에 거의 1주일 내내 눈이 내려 쌓였고, 미국도 50cm 안팎의 눈이 내렸습니다. 그런데 한겨울 눈이 내릴 때는 기온이 따뜻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북서쪽 시베리아 ‘고기압’ 영향을 받을 때 맑은 대신 춥고, 남쪽에서 따뜻하고 습한 공기가 올라올 때 눈이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전북 순창군 주민이 농기계를 이용해 눈을 치우는 모습. 23일 순창에는 적설량 38.3cm가 기록됐습니다. 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올해 이상하게 혹한과 폭설이 동시에 나타나는 이유는 3년째 이어지고 있는 ‘라니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최전성기에 비해 많이 약해졌다고는 하지만 북태평양 바다는 지금까지도 라니냐 영향으로 비정상적인 고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통상 라니냐가 나타나면 북반구 태평양 표면은 뜨겁고, 남반구 태평양은 차가운 상태가 유지됩니다.
 

전세계 해수면이 평년 대비 얼마나 뜨거운지를 보여주는 지도. 지독한 한파가 불어닥쳤는데도 아직 서해와 동해 북부쪽 바닷물의 기온이 높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NOAA

평소보다 뜨거운 바다에서는 계속해서 수증기가 공기 중으로 증발합니다. 그렇게 증발한 수증기가 평소보다 차가운 공기를 하늘에서 만나면 다시 물이 되고, 더 차가운 공기를 만나면 얼어서 눈이 됩니다. 그리고 바다에서 만들어진 눈이 육지를 만나면 울퉁불퉁한 표면 때문에 속도가 느려지면서 해안가 지역에 켜켜이 쌓이게 됩니다. 서해안에 다른 때도 눈이 많이 내리지만, 올해 특별히 눈이 많이 내리고 또 녹지 않은 이유도 혹한과 폭설이 한 번에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26일(현지시각) 뉴욕주 이리 카운티에 내린 폭설로 차가 뒤덮인 모습. 미국 동부 주요 지역을 덮친 폭설과 한파로 희생자 수십 명이 나왔다고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습니다. 신화 뉴시스

미국도 원인은 비슷합니다. 미국 동부 해안의 수온이 평소보다 높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이들 지역을 중심으로 따뜻하고 습한 공기가 유입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갑자기 북극 한기가 몰아치면서 습하고 따뜻한 공기와 뒤섞여 (+오대호의 습기까지 더해져서) 폭설과 폭우가 내리게 된 겁니다.
날씨는 재난이 될까
역대급 태풍, 여름철 폭우, 한겨울 강추위에 눈폭탄…. 모두 최근 6개월 사이에 우리가 겪은 일들입니다. 폭우나 태풍, 강추위나 폭설 모두 우연이 겹쳐 발생한 일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전 세계가 이런 비정상적인 날씨를 더 자주 겪고 있다는 점은 확실해 보입니다. 새해부터는 더 이상 날씨가 재난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면 해야 할 겁니다. 독자 여러분 모두 평안한 세밑 보내시길 ‘날飛’가 기원하겠습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