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 부모는 담대해야 한다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아이가 뭔가 말썽을 피워서 엄마가 혼을 좀 냈다. 아이는 혼이 나는 와중에도 한마디도 지지 않고 ‘따박따박’ 말대꾸를 했다. 화가 조금씩 오르던 엄마는 어느 순간 욱해서 소리를 꽥 지르며 아이를 무섭게 혼을 내고 말았다. 아이는 더더욱 화를 내며 급기야 “나는 엄마가 진짜 싫어!”라는 말을 던졌다. 엄마는 순간 아이가 홧김에 한 말인 것을 너무나 잘 알지만 마음이 좀 복잡해졌다. 그 상황이 지나고 둘 다 감정이 가라앉으면서 서로 화해(?)도 하고 아이 기분도 좋아졌지만, 잠자리에 든 엄마는 낮에 아이가 한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정말 나를 싫어하나?’라는 생각까지 살짝 스쳤다.
부모는 아이를 목숨 바쳐 사랑한다. 어느 부모나 그렇다. 하지만 갈등 상황에는 순간적으로 아이가 미워지기도 한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가진 기본 마음은 부모를 누구보다 사랑한다. 언제나 부모가 자신을 가장 사랑해주기를 원한다. 하지만 갈등 상황에서조차 그런 마음을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부모가 순간 미울 수 있다. 그런데 아이가 하는 ‘부모가 싫다’라는 말은 아이의 연령을 감안해 이해해야 할 필요는 있다.
어린 유아가 “엄마 싫어!”라고 말했다면, ‘엄마, 나 불편해’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편식이 심한 아이에게 싫어하는 음식을 계속 강요하거나 아이가 불편한 방식으로 계속 놀아줄 때, 아이는 종종 “싫다”라는 표현을 쓴다.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의 아이가 “엄마 싫어!”라고 말했다면, 안타깝지만 정말 싫은 것이다. 사춘기에 접어들면 아이는 사람이 싫어지는 단계에 슬슬 돌입한다. 삶의 기준이나 가치관이 너무 다를 때, 내 영역을 너무 침해할 때, 말이나 힘으로 자신의 존재나 자존감에 상처를 줄 때, 아이는 그 사람이 싫다. 그 사람이 부모라도 그렇다. 부모라서 더 그렇기도 하다. 특히 때리거나 내쫓거나 자신을 무시하는 부모를 무척 싫어한다. 사춘기는 워낙에도 독립하려는 욕구가 강해 부모와 떨어지고 싶어 하는 시기다. 싫어지기까지 하면 부모를 가까이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런 아이들은 자주 “나가고 싶다. 혼자 살고 싶다”라는 말을 한다.
어떤 연령이든 아이가 부모를 싫다고 말한 것은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표현한 것이다. 그 말을 들으면 부모 또한 마음이 불편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감정은 수긍해주어야 한다. “엄마가 싫다고 할 때 네 마음은 얼마나 힘들겠니? 나도 너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많이 힘들구나. 하지만 이건 너와 내가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야. 어떨 때 싫은지 얘기해주면 엄마가 많이 노력할게”라고 말해줘야 한다. 어린아이들은 이렇게만 해줘도 많은 부분이 풀린다.
어린아이들에겐 직접 무엇이 불편한지 물어보는 것이 좋다. 정서적으로 편안하고 안전한 상황에서 “어떨 때 엄마가 싫어?”라고 물으면 의외로 대답을 잘해준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왔을 때 손 닦으라고 하는 게 싫어”라고 한다면, “그런데 엄마는 네가 유치원 갔다 와서 손을 안 닦으면 ‘그래라’ 할 수는 없어”라고 솔직한 엄마의 입장도 들려준다. 아이가 “난 엄마가 화내는 것이 싫어”라고 한다면, “그럼, 좋게 말해줄게. 좋게 말하면 너도 들을 거지? 손은 닦아야 해” 정도로 하면 된다.
사춘기 아이는 가치관과 영역을 존중해줘야 한다. 아이의 자존심을 건드리면 안 된다. 아이를 손아귀에 쥐려 하지 말고 충분한 안전거리를 두어야 한다. 그리고 사랑이 느껴지도록 따뜻하게 대해 주어야 한다. 그것이 지금의 감정을 증오로 넘어가지 않게 하는 방법이다. ‘부모가 그 정도 말도 못 해? 그런다고 자식이 부모를 싫어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의 감정이다. 그럴 수 있다. 아이는 나와 다른 사람이다. 아이는 아이만의 생각과 감정이 있다. 아직 어려서 다듬어지지 않은 표현으로 부모 마음에 상처를 줄 수도 있다. 부모는 담대해야 한다. 아이는 아이이고, 부모는 부모다. 그 어리고 작은 실수에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