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송동주민센터에 상자 위치 전화 “소년소녀 가장 등에 도움됐으면” 7600만원 담겨… 누적 8억8473만원
전북 전주시 완산구 노송동주민센터 직원들이 익명의 기부자가 기탁한 현금을 세고 있다. 이 기부자는 2000년부터 매년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을 익명으로 기부해 전주의 ‘얼굴 없는 천사’로 불린다. 전주시 제공
2000년부터 매년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어려운 이웃에게 온기를 전해온 전북 전주의 ‘얼굴 없는 천사’가 23년째인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27일 전주시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 1분경 완산구 노송동주민센터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굵직한 목소리의 중년 남성은 “성산교회 인근 유치원 차량 아래에 상자를 뒀다. 어려운 분들을 위해 써 달라”는 말만 남긴 채 뚝 끊었다.
전화를 받은 오민희 서기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올해도 ‘얼굴 없는 천사’가 잊지 않고 찾아오셨다”고 말했고, 동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오 서기보 등 직원 4명은 한걸음에 성산교회로 뛰어갔고, 유치원 차량 밑에 놓인 상자 1개를 발견했다.
이 기부자는 2000년 4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 달라”며 58만4000원을 놓고 간 것을 시작으로 매년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씩 기부하면서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전혀 드러내지 않아 전주의 ‘얼굴 없는 천사’로 불린다. 2019년에는 노송동주민센터 인근에 놓고 간 6000여만 원을 도난당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지만, 천사는 선행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이날 기부로 올해까지 누적 성금은 8억8473만3690원에 이른다.
전주시는 성금을 기부자의 뜻에 따라 지역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과 소년소녀 가장 등에 대한 지원금으로 쓸 예정이다. 전주시 관계자는 “얼굴 없는 천사의 선행으로 전주는 ‘천사의 도시’로 불려왔으며, 그를 본받아 익명으로 후원하는 시민도 꾸준히 늘고 있다”면서 “천사들의 후원금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잘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전주=박영민 기자 minpr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