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공급망 재편에 대만 최대 수혜”
미국의 대(對)중국 반도체 제재가 심화하는 동안 대만의 미국 반도체 수입시장 점유율이 두 배 가까이로 뛰었다. 상대적으로 한국의 미국 내 점유율은 소폭만 늘어나는 데 그쳐 미중 갈등의 반사이익을 가져오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8일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따른 한국의 기회 및 위협요인’이란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중국으로부터의 반도체 수입을 대폭 줄이는 대신 대만과 베트남으로 공급처를 전환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반도체 수입시장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중 무역 갈등이 본격화된 2018년 30.1%에서 지난해 11.0%로 급감했다. 같은 기간 대만의 점유율은 9.7%에서 17.4%로 3년 만에 7.7%포인트 늘었다. 메모리 반도체 패키징 공장이 많은 베트남과 말레이시아는 미국 수입시장 점유율이 각각 6.5%포인트(2.6%→9.1%), 2.4%포인트(24.0%→26.4%) 증가했다. 한국은 11.2%에서 13.2%로 2.0%포인트 증가하는 데 그쳤다. 조사 대상에는 시스템 반도체뿐 아니라 메모리 반도체, DAO(광개별소자 및 아날로그 반도체)가 모두 포함됐다.
특히 글로벌 1위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는 애플, 엔비디아, 퀄컴 등 미국 대형 고객사들을 확보하면서 글로벌 시장점유율에서도 2위 삼성전자와의 격차를 계속 벌리고 있다. 이에 더해 미국 내 생산라인 투자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이달 6일(현지 시간) TSMC의 애리조나주 피닉스 공장 장비 반입식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주요 빅테크 최고경영자(CEO)들이 참석해 밀월 관계를 과시하기도 했다. TSMC는 당시 미국 내 400억 달러(약 50조7000억 원) 투자 발표도 했다.
대만 내부에서는 공격적인 해외 투자에 대해 ‘탈(脫)대만’ 우려까지 나올 정도다. 27일(현지 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장중머우(張忠謀·모리스 창) TSMC 창업자는 포괄적인 생태계와 우수한 노동력을 보유한 대만이 여전히 최적의 투자 장소라고 말했다”며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또 다른 수혜국인 베트남과 말레이시아의 경우 후공정에 해당하는 패키징과 테스트 공정에서 중국의 몫을 일부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에는 인텔의 세계 최대 패키징 테스트 공장을 포함해 삼성전자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현지 법인들이 자리 잡고 있다. 도원빈 한국무역협회 연구원은 “패키징의 경우 실제 부가가치는 높지 않지만 최종 완제품 가격으로 수입 통계에 잡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점유율이 높게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 아직까지 메모리 반도체가 대미(對美) 수출을 견인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가별로는 중국 의존도가 여전히 높았다. 지난해 기준 중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시스템 반도체는 32.5%, 메모리 반도체는 43.6%에 달했다. 보고서는 “중국에 편중된 반도체 수출을 다른 국가로 다변화할 필요가 커지고 있다”며 “특히 지난해 기준 전 세계 반도체 수요의 21.6%를 차지한 미국은 놓칠 수 없는 시장”이라고 강조했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