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함메르쇠이 ‘휴식’, 1905년경.
초상화를 그릴 때는 모델의 정면이나 측면을 그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덴마크 화가 빌헬름 함메르쇠이는 뒷모습을 그렸다.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최소한의 가구만 있는 실내에서 등을 돌리고 있기 때문에 정체도 표정도 알 수 없다. 화가는 왜 모델의 뒷모습을 그렸던 걸까?
코펜하겐 출신의 함메르쇠이는 시적이고 고요한 회색 톤의 초상화와 실내 풍경화로 유명하다.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등 외국을 다니긴 했으나 고향인 코펜하겐에 평생 살며 자신의 집과 주변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이 그림은 1898년부터 11년간 살았던 스트란가데 30번지 아파트의 실내를 보여준다. 나무 의자에 앉은 여인은 오른팔을 등받이에 살짝 걸친 채 느슨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탁자 위에는 꽃 모양의 하얀 그릇이 놓여 있다. 뒷모습이라 하녀인지 부르주아 여성인지는 알 수 없다. 회색과 갈색 톤이 화면 전체를 지배하고 있어 차분하고 고요하다. 조금 우울해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고 인간의 외로움이나 고독을 표현했다고 속단하긴 이르다. 목덜미를 훤히 드러낸 여성의 머리는 부스스하고, 블라우스도 벌어져 있다. 관능적인 표현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제목이 제시하듯 여자는 하루 일과를 끝내고 혹은 그사이에 휴식을 취하는 중이다.
그림 속 모델은 화가의 아내 이다다.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정신 불안증 때문인지, 우울한 눈빛과 깊은 슬픔은 그녀의 얼굴이 드러난 초상화 대부분에서 발견된다. 함메르쇠이가 아이를 갖지 않은 것도, 아내의 뒷모습을 주로 그린 것도 바로 그 때문으로 보인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