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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널리 보급된 실상 담겨”…조선 군관의 편지 보물된다

입력 | 2022-12-29 16:04:00


“분(화장품)하고 바늘 여섯을 사서 보낸다. 집에 못 다녀가니 이런 일이 어디에 있을꼬 울고 간다.”

세종(1397~1450)이 한글을 창제하지 않았다면 1490년대 함경도 변방에서 군관으로 일하던 남편이 부인에게 이런 편지를 부칠 수 있었을까. 문화재청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글 편지인 ‘나신걸 한글편지’(사진)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한다고 29일 밝혔다.

이 편지는 조선 초기 군관이었던 나신걸(1461~1524)이 부인 신창맹 씨에게 한글로 써 보낸 편지 글 2장이다. 편지는 2011년 대전 유성구 금고동에 있는 신 씨의 묘를 후손들이 이장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관 속 신 씨의 머리맡에 편지가 여러 번 접힌 상태로 있었다. 편지를 넣은 보관함은 없었다. 아래, 위, 좌우 여백 없이 빼곡히 채워진 편지글에는 어머니와 자녀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이 없는 동안 가정을 잘 살펴 달라는 당부가 담겼다.

편지에 함경도의 옛 지명인 ‘영안도(永安道)’가 쓰인 점에 미뤄 나신걸이 함경도에서 군관 생활을 하던 1490년대에 작성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은 “1446년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불과 약 45년이 지난 시점에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 지역의 하급 관리에게까지 한글이 널리 보급된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핵심 유물”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하급 무관 남성인 나신걸이 유려하고 막힘없이 한글을 구사한 사실을 통해 한글이 여성 중심의 문자였다는 통념과 달리 조선 초기부터 남성도 한글을 익숙하게 사용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까지 발견된 한글편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높임말과 호칭 등 15세기 언어생활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