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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취약 방음터널, 삽시간에 830m 불바다

입력 | 2022-12-30 03:00:00

[과천 방음터널 화재]
과천 제2경인고속도 터널서 화재… 5명 숨지고 37명 부상
터널 벽-천장, 불 잘 붙는 가연성 소재 사용해 피해 커져



화염이 삼킨 터널… 트럭서 난 불 번져 차량 45대 불타 29일 오후 경기 과천시 갈현동 제2경인고속도로 북의왕 나들목(IC) 인근 방음터널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다. 이날 오후 1시 49분경 트럭에서 발생한 화재가 방음터널에 옮겨붙으면서 불길이 순식간에 확산됐다. 이날 화재로 5명이 숨지고 37명이 부상당했다. 차량 45대도 소실됐다. 독자 송유환 씨 제공


경기 과천시 갈현동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을 달리던 트럭에서 불이 나 5명이 숨지고 37명이 부상을 입었다.

29일 경기소방재난본부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 49분경 안양에서 성남 방향 북의왕 나들목(IC) 인근 갈현고가교 ‘방음터널’(830m)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독자제공

화재는 폐기물을 싣고 주행하던 5t 폐기물 집게 트럭에서 시작됐다. 이 트럭은 터널 시작 지점에서 약 280m를 달린 후 불이 나 정지했다. 이 트럭 운전사는 사고 현장 인근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엔진에서 불이 나 차가 멈췄다. 차량에 있던 소화기로 진화를 시도했다. 그런데 불이 안 꺼져 119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불은 트럭 뒤에 실려 있던 폐기물로 옮겨붙었고 아크릴의 일종인 ‘폴리메타크릴산메틸(PMMA)’ 소재 방음벽과 터널 천장까지 빠르게 확산됐다. 한국도로공사 산하 도로교통연구원의 2018년 보고서에 따르면 PMMA는 강화유리 등 다른 재료보다 저렴하지만 불이 쉽게 붙고 빨리 녹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자제공

불이 급속도로 옮겨붙은 탓에 미처 터널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한 5명이 사망했고, 37명은 화상과 연기 흡입 등 부상을 입었다. 소방당국은 인접 소방서까지 총출동하는 대응 2단계를 발령하고 소방차 등 화재 진압 장비 77대를 투입했다. 이어 화재 발생 2시간여 만인 오후 4시 12분경 화재를 진압했다. 경찰은 전담수사팀을 꾸려 트럭에서 갑자기 불이 난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화재 사고와 관련해 “철저한 수색 및 구조된 분들에 대한 의료 조치에 만전을 기하라”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지시했다.



방음벽 소재, 강화유리보다 싸지만 불에 약해… 불똥비 쏟아졌다

폐기물 수집車서 난 불, 벽타고 번져
2020년 수원 터널 화재도 같은 재질
휘발성 물질이 유독가스 내뿜어
美 등은 불연소재… 韓, 규정 없어

형체만 남고 다 타버린 터널 안 차량들 29일 오후 경기 과천시 갈현동 제2경인고속도로 북의왕 나들목(IC) 인근 방음터널 화재로 전소된 차량들. 방음터널 내부는 폭격을 맞은 듯 골격만 간신히 남아 있다. 터널 내부에서 시작된 불길이 가연성이 높은 플라스틱 소재 방음벽과 터널 천장으로 빠르게 확산되며 피해를 키웠다. 독자 제공

“트럭에서 갑자기 불이 나더니 터널 전체로 순식간에 불이 확산됐습니다. 온 힘을 다해 밖으로 뛰어나왔어요.”

29일 오후 제2경인고속도로 북의왕 나들목(IC) 인근에서 발생한 ‘방음터널 화재’ 목격자 박모 씨는 사고 현장 인근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긴박했던 화재 당시를 회상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전문가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연성 소재의 방음벽으로 불이 옮겨붙으면서 피해가 커졌다고 지적했다.
○ “순식간에 불길 확산”

화재 당시를 찍은 영상을 보면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실감할 수 있다. 갓길을 포함해 왕복 8차로 도로가 모두 화염에 뒤덮인 상태인데 터널 입출구로는 검은 연기가 하염없이 배출되는 모습이다. 방음터널 천장이 열기에 녹아 뚝뚝 떨어지는 장면도 영상에 담겨 있다.

터널에서 간신히 탈출했다는 심모 씨는 “터널에 막 접어드는데 폭발 소리가 나면서 차가 정체되기 시작했고 연기가 터널 밖으로 밀려나왔다”며 “후진을 해서 겨우 나왔는데 못 나온 사람도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소방당국은 폐기물 수집 집게 트럭에서 불이 시작된 것으로 파악했다. 이 트럭 운전사 이모 씨(63)는 이날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처음에는 불이 붙었다는 걸 몰랐다. 엔진에서 불이 나 차량이 자동으로 멈춰 서자 하차 후 차량에 있는 소화기 2개로 진화를 시도했다. 그런데 불이 꺼지지 않아 119에 신고했다”고 했다.
○ 저렴한 가연성 소재가 불길 키워

제2경인고속도로 경기 과천 갈현고가교에서 버스.화물 추돌사고로 인한 화재로 6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불을 진화하며 사상자를 찾고 있다. 과천=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이번 화재는 플라스틱 소재 방음벽 때문에 피해가 커진 것으로 분석된다. 불이 난 터널의 방음벽은 알루미늄 철골 구조에 아크릴의 일종인 ‘폴리메타크릴산메틸(PMMA)’로 제작됐다.

방음터널에는 강화유리가 많이 사용되지만 PMMA가 더 가볍고 설치가 쉬워 최근 방음벽 재료로 많이 쓰인다고 한다. 가격도 강화유리보다 저렴한 편이라 공사비를 아끼려는 시공업체에서 많이 찾는다. 문제는 휘발성 유기물질을 포함하고 있어 화재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불이 붙은 PMMA는 유독가스를 다량 내뿜어 질식을 초래할 위험이 크다.

PMMA 소재 방음터널 화재는 과거에도 있었다. 2020년 8월 경기 수원시 영통구 하동 광교신도시에서 해오라기터널로 이어지는 하동 나들목 고가차로에서 승용차에서 발생한 화재가 벽면을 타고 불이 옮겨붙어 PMMA 소재 방음터널 200여 m가 뼈대만 남고 다 탔다. 인세진 우송대 소방안전학부 교수는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방음터널에는 불연 소재를 사용하는데 한국에는 관련 규정이 없다”고 지적했다.
○ 방음시설 안전기준도 미비

경기소방재난본부 제공

교통소음 저감 목적의 방음시설은 환경부 기준에 따라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기준 자체에 안전에 대한 내용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소음진동관리법 관련 조항을 살펴본 결과 화재와 관련된 내용은 ‘한국산업규격(KS)에서 정하는 규격에 적합하거나 동등 이상의 재료로 해야 한다’, ‘방음시설은 내구성, 내화성이 좋은 것으로 한다’ 등 두 가지뿐이었다. 고용노동부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최명기 교수는 “방음판 재질을 화재 안전성(불연성)을 고려해 선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과천=이경진 기자 lkj@donga.com
과천=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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