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품 이야기/로버트 젠슨 지음·김성훈 옮김/408쪽·1만9800원·한빛비즈
대형 인명 사고는 큰 트라우마와 함께 비슷한 사건의 재발을 막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사회에 남긴다. 2001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로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가 붕괴한 뒤 그 자리에 조성된 9·11 기념공원.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사랑하는 이를 잃고 나면 그 사람에 대해 몰랐던 것들이 결국 그에 대해 아는 전부가 된다.”
책머리에 실린 T S 엘리엇의 시를 읽고 책장을 넘기면 먼저 이런 문장과 만나게 된다. “신발은 항상 나온다. 지진, 사고, 화재 등 사건과 상관없이 신발은 어디에서나 보인다. 가끔은 발이 그 안에 들어 있기도 한다.”
올해 10월 이태원 핼러윈 참사를 겪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읽기 참혹하다. 그러나 사회는, 최소한 사회의 일부는 이런 참혹을 피하지 않고 대면하며 헤쳐 나가야 한다.
런던과 미국 휴스턴에 있는 이 회사 창고에는 안경, 시계, 신발 같은 유류품이 가득하다. 참사가 발생하면 이 회사는 물건들을 어떤 상태로 돌려받길 원하는지 유족에게 물어본다. “엄마가 죽은 아들의 셔츠를 마지막으로 빨아주고 싶어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영영 못 보는 건가요?”라는 질문에 확실한 답을 주는 것은 시신의 발견이다. 그러나 때로는 유류품이 죽은 이를 대신한다. 비행기 사고에서 숨진 한 남성의 가방에서 여성의 헤어롤이 발견됐다. 아들의 방을 치우지 못하고 있던 어머니는 유품을 보고는 비로소 오열하며 자식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헤어롤을 치우지 못한 채 급히 가방을 빌려주었던 것이다.
유전자(DNA) 분석 기술의 발전은 오래된 작은 시신 조각까지 유족을 찾아주지만 예상하지 못한 일도 뒤따른다. 한 사고에서 사망한 부녀는 생물학적 부녀가 아니었고, 그 사실은 딸의 엄마만 알고 있었다. 이후 유족을 위한 DNA 정보 제출 문서에 “친자 관계와 관련해서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올 경우 알기 원하는가”라는 질문이 추가됐다.
저자는 사망 사고의 수습 책임자가 염두에 두어야 할 일 세 가지를 강조한다. 첫째는 죽은 자의 존엄이다. 둘째는 산 자다. 생존자와 유족, 지역 공동체 등이 해당된다. 셋째는 사고 조사다.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때로는 이 셋의 이해관계가 충돌한다. 유족의 요구대로 신속하게 시신을 수습하려다가 사건이 일어난 이유와 증거를 놓칠 수도 있다.
나아가 사건에 관한 양질의 정보를 일관성 있게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유족들이 슬픔 속에서 복잡한 시스템을 헤매고 다니도록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통제할 수 없는 것과 싸우지 말고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실수를 인정하며 교훈을 얻지 않는다면 나쁜 일은 계속 되풀이될 것이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